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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Jul 27. 2023

평생 수강생


전보가 되어 타 지역에 가면 맨 먼저 대학교 탐방을 시작한다. 제주도에는 제주대학교와 제주관광대학교, 제주한라대학교, 제주국제대학교가 있다. 대학교라는 말만 들어도 청춘의 열정이 꿈틀대고 학창 시절의 멋진 기억들이 떠올라 묘한 매력이 있다. 일상이 힘들거나 삶이 버거울 때면 홀로 학교를 거닐며 위로받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곤 했다. 출근 전에 잠시 들르는 교정의 아침은 이른 시간임에도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힘찬 발걸음으로 항상 생기가 넘쳐 그 속에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치유되고 힐링이 되는 곳이다. 꿈과 희망이 있고, 절망을 기대로 바꾸어 주며,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나로 성장시켜 준 곳이었다. 그래서 평생 동안 대학교를 가까이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대학교와 함께 했다.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고, 매 학기 평생교육원에서 자기 계발을 위한 강의를 들었다. 문예반, 통기타반, 스포츠댄스반, 실용음악반, 시창작반, 서예반, 성악반, 영어회화반…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정도로 많은 강좌를 짧게는 한 학기, 길게는 여러 해 동안 수강했다. 제주에서도 필요한 것을 배우기 위해 대학교 평생교육원을 찾았다. 예전에 배웠던 강좌가 취미 생활이나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에 수강을 하려는 강좌는 선택의 기준이 달랐다. 정년을 앞두고 퇴직 준비를 위한 교육이 필요했던 것이다.

 

제주한라대학교에서 동영상 제작 강좌를 수강했다. 출간 후에 책 읽는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계획을 세웠다. 강사님은 직업이 있으면서 근무 시간 외에 동영상 제작 강의를 하는 분이었다. 동영상 제작은 파워디렉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진행되었다. 컴퓨터도 잘 모르는데 영상 편집까지 하려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만든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보고 싶은 욕심에 포기하지 않고 수료를 했다. 첫 영상을 제작할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사진과 목소리, 글자를 삽입하고 잘라내고 지우고 이어가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이틀에 걸쳐 완성을 했다. 영상 제작은 기술이나 지식도 중요하지만 엄청난 끈기를 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숙하지만 내 손으로 동영상을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렸다는 사실이 대견하고 기뻤다. 그 후 출간한 수필집의 작품을 한 편씩 낭독하고 올레 코스를 거닐며 찍은 사진을 배경으로 동영상을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렸다. 유튜버가 된 것이다. 


제주대학교에서 글쓰기 강좌를 수강했다. 강사인 차영민 작가는 제주도 애월리에 있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겪었던 이야기를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 수필집으로 출간하였으며, 소설가이면서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에 가서까지 글쓰기 강의를 수강한 이유가 있다. 제주도의 일상을 소재로 한 작가의 글을 읽으며 제주를 조금 더 알고 싶기도 하고, 작가님이 매우 젊은 분이어서 나의 필력도 조금 생기 있고 젊어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강의 내용이 이론 수업도 병행해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글쓰기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수강 과정에서 출간된 나의 책을 작가님에게 드리고, 작가님도 자신의 책을 선물해 줘서 서로 사인을 하고 교환하는 영광을 누렸다.


스피치 강좌도 수강을 했다. 서울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제주에 정착한 제주스피치 정감 신선희 강사로부터 스피치 교육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남들 앞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중병을 앓고 있던 터라 스피치는 오랫동안 아킬레스 건으로 남아 있었다. 끈질긴 노력으로 조금 나아지기는 하였어도 여전히 남들 앞에서 말을 하는 건 스트레스이고 심적 부담이 많았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제주에서 심화 과정을 해보고 싶었던 차에 딱 맞는 강좌가 있어 신청을 했다. 기존의 스피치 강의와 달리 주제를 주고 글을 써오도록 하여 낭독하게 하고, 이를 영상으로 녹화하여 공유하며 피드백을 해주니 말할 때의 장단점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후반부에 가면서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에 맞추어 자신의 의견을 말하도록 하는 훈련도 했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이 컨트롤하면서 대중에게 전달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종강 수업은 카페에서 진행하여 스피치에 대한 수강생들의 생각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도 사람 앞에서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다음 학기에도 수강을 하려고 하였으나 육지로 출도를 해야 해서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기타 학원도 다녔다.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여 제주에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연주 스킬도 배우고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학원 등록을 하고 열심히 다녔다. 학원이다 보니 초등학생을 비롯하여 학생들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기타를 배우는 학생들을 보니 무척 부러웠다. 50이 넘은 나이에 시작하다 보니 실력이 늘지도 않고 열정도 모자라서 내내 제자리걸음이다. 당시 환경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어릴 때 악기공부도 시켜주었으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힘들 땐 그만둘까 하는 마음도 여러 번 있었으나 놓지 못하고 꾸준히 하고 있다. 통기타는 지칠 때 위로가 되고, 혼자 있을 때 함께 놀아주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해주는 가장 친한 친구다. 통기타가 있어 힘들고 외롭고 치열한 세상을 잘 견디고 있다. 


직장에 다니다 보니 꼭 받고 싶은 강좌가 있어도 주간에는 수강을 할 수 없고 야간 수업만 받을 수 있다. 퇴근 시간에는 차량이 몰려 교육원까지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수업이 있는 요일에는 근무 시간이 끝나면 바로 교육원으로 달려간다. 수업이 늦게 끝나므로 수업 전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 1인 식사가 가능한 식당을 찾아보지만 많지 않아 주로 편의점을 이용한다. 학생들 사이에 끼어 편의점 한 구석에서 김밥이나 컵라면을 먹으려니 처음에는 많이 어색하고 눈치도 보였으나 이제 일상이 되었다. 혼자 먹기에는 편의점보다 좋은 곳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교육원을 애용하고 있다. 인기 있는 강좌는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마감이 되므로 일찍 준비하였다가 신청을 해야 한다. 강좌 수도 굉장히 많고 신설되는 강좌도 많다. 교육원의 매력은 강좌가 다양하고 비용도 저렴하며, 대학에서 운영하므로 교육 과정이 체계적이고 강사도 철저히 검증하여 관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수강하는 강좌를 보면 그 사람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기 원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도 그동안 수강한 강좌의 내역을 보면 앞으로 걸어갈 길을 보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다니며 학습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노후 준비도 하고 있다. 나도 평생교육원에서 미래 준비를 하고 있다. 평생 수강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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