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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Oct 28. 2019

다시 그 길 위에 서고 싶다 (Ⅱ)


  아이들이 공항버스 터미널에 동행해 주었다.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아무 걱정하지 말고 건강히 다녀오라고 한다. 이전엔 우리가 아이들을 배웅해 주었었는데 이번엔 우리가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게 되니 아이들이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배웅해 주었을 때 아이들도 지금의 우리와 같은 생각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러시아 항공을 탔다. 공항에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삶을 좀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환승을 포함하여 16시간의 비행이 시작되었다. 모스크바에서 환승을 하여 마드리드행 스페인 비행기를 탔다. 스페인 노인분들이 가득했다. 아마 모스크바로 단체 여행을 다녀오는 것 같았다. 이륙을 하니 노인분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를 걷거나 서 있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여행은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멀어질수록 자신이 점점 작아짐을 느낀다. 한국인도 점점 보이지 않게 되고, 언어도 못 알아듣는 말들이 많아지면서 주위 환경도 낯설어지고 나와 아내 둘만이 무인도에 남겨진 것 같다.


마드리드에 도착하여 예약한 한인 호텔을 찾아 짐을 풀었다. 자유여행을 하고 있다는 한국에서 온 학생들을 만났는데, 다음 일정은 미국으로 간다고 한다. 많은 사연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젊었을 때 몸으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부러웠다. 학생들의 도움으로 돌아오는 날의 숙소를 예약하고 긴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자리에 누웠다. 남의 도움 없이 둘만의 힘으로 이곳까지 온 것이 정말 대견하고 꿈만 같았다.


"여행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며,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서는 여정이다."    


  다음날 새벽, 일찍 눈을 떴다. 피로 탓인지 시차의 변화에도 잘 잤다. 레온으로 가는 방법을 두고 상의한 끝에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생각으로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역 자동판매기에서 표를 사고 지하철 1호선을 탔는데 아뿔싸 반대로 간다. 허겁지겁 내리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당황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손잡이를 잡고 가볍게 여는 것이다. 스페인 지하철은 자동문이 아니었다. 우린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한참 웃었다. 실수마저도 재밌고 즐거웠다. 우여곡절 끝에 남부터미널에 도착해서 표를 끊고 샌드위치와 커피, 코카로 아침 식사를 했다. 다소 실수도 하고 황당도 했지만, 아내는 우리가 너무 잘하고 있다며 즐거워했다.


  우리는 자력으로 비행기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이제 시외버스까지 탔다. 여행하는 사람들의 로망이라는 자유여행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조금씩 갖기 시작한 것이다. 창문 너머 스페인의 풍경은 가을로 접어든 드넓은 초원지대가 추수를 끝낸 후라 황량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인구는 비슷한데 넓이가 다섯 배나 되다 보니 어딜 가도 탁 트인 풍경은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레온에 있는 산타마리아 베네딕트 수도원에 도착해서 침대를 배정받고 간단한 정비를 마치고 관광열차로 도시 탐방을 했다. 유럽임을 실감케 하는 건축물들이 가득했다. 특히 모든 식당과 주점이 길가에 의자를 내놓고 장사를 하는 모습이나, 한낮부터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길거리를 다니면서도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유럽과 다른 이미지여서 낯설게 보였다. 선진국이라는 나라가 이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선진국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저녁에는 레온 성당에서 미사를 봤다. 미사는 어디서나 똑같다더니 한국에서의 미사와 똑같이 진행되었다. 미사 내내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와 같은 순례자들도 여러 명이 미사에 참여했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얼굴에 웃음과 기쁨이 넘치는 걸 볼 수 있었다. 신부님이 순례자들을 위해 개개인에게 은총을 내려주셨다. 수도원 앞마당에 앉아 하늘의 별을 보며 우리의 갈 길을 잘 인도해 주길 바랐다.


  수도원 알베르게는 매일 세계 각지에서 오는 180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는데, 남녀 구분만 있는 두 방에서 불평이나 불만 없이 잘 지내다 떠난다고 하니 신기했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편안함이나 이기심은 모두 내려놓고 각자 얻고자 하는 소망이나 깨닫고 싶은 의미를 간직하고 이 길에 들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과연 이 여정에서 무엇을 찾게 될까?


"예전에는 여행을 가려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떠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계획을 세우지 않고도 떠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4일째, 순례길의 첫날이다. 간단히 빵과 커피로 식사를 마치고 순례자들을 따라 길을 나섰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배낭의 무게가 너무 버거웠고, 앞으로 걸을 길이 만만치 않을 거라 느끼기에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순례자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300킬로를 걸어야 한다는 현실이 마음을 무겁게 조여 왔다. 그래도 계획했고 오래 준비한 거라 포기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계획대로 향로 미사를 볼 수 있을까에 생각이 집중되었다.


  길도 헤매고 점심도 굶고 고생 끝에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첫날 고생한 기억은 아직도 하기 싫은 기억 중의 하나다. 미리 와 있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수속을 마치고, 순례 정보도 얻고 가벼운 마음으로 씻고 맥주도 한잔 했다. 스페인의 가을 날씨는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 날씨와 같았다. 매일 하루의 고행을 마치고 간단한 샤워와 세탁 후에 따사한 햇살 아래 정원에서 즐기던 한가함과 여유로움은 여행 후에도 있지 못하는 백미 중의 하나이다.


  이번 일정을 마치기 위해서는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길을 걷다 보면 무게의 고통으로 안내서마저 지나온 부분은 찢어 버렸다는 형제님의 고언을 간과한 것이다. 현재 짐의 무게로는 완주도 어렵겠지만 아내의 건강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어서 안전하게 걷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더 가보자는 아내의 말을 무시했다. 숙소에서 만난 순례자들로부터 힘들 땐 배낭을 다음 목적지로 보내는 ‘덩키’라는 방법과 어려운 코스는 건너뛰며 가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택의 기로에 섰으나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민 끝에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로 했다. 이번 여행이 고행이 아닌 행복한 시간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물건만 지니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뭐가 진정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 줬다. 여행을 통해 버리고 비워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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