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굶었다. 무려 3일 동안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을 했다. 아침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다. 신혼여행에 갔다 와서 출근을 하려고 아침 식탁에 앉으니 밥이 보이지 않았다. 식탁 위엔 토스트에서 갓 꺼낸 샌드위치와 딸기잼, 계란 프라이, 우유 두 잔이 놓여 있었다. 식탁에 앉은 채로 멍하니 있는 나를 보고 아내는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다. “밥은 어디 있어?”, “이게 밥인데.”
3일 연속 샌드위치를 마주하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출근을 했다. 신혼 초에 기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날짜가 지나면서 새신랑이 굶고 가는 것이 미안했는지 샌드위치와 밥을 같이 차리기 시작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평생 아침 밥상은 받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모른 척 밥을 먹고 출근을 했다. “나는 밥과 국이 없으면 아침밥을 먹지 못해.” 일주일쯤 지나자 아내가 샌드위치를 치우고 밥에 국을 준비하여 같이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침 밥상을 지키게 되었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듣던 말은 밥을 꼭 챙겨 먹으라는 것이었다. 생활이 어려운 환경에서 밥을 잘 챙겨 먹는다는 것은 최소한의 자긍심이자 고단한 삶의 위안이라 생각하신 것 같았다. “지금 끼니를 놓치면 평생 그 끼니를 챙길 수 없으니 식사만은 꼭 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그때만 해도 그런 아버지의 말씀이 씁쓸하기도 하고 애잔하다는 생각이었으나 어느새 세뇌가 되었던 것 같다. 군에 가서도, 객지 생활을 하면서도 절대 끼니만은 거르지 않았다. 그것도 꼭 밥과 함께 국이 있는 밥상을 고집하였다.
아내는 취직을 하고 객지에서 혼자 자취를 하면서 밥보다는 빵을 주식으로 하였던 것 같다. 지금도 밥보다는 빵과 떡을 더 좋아하는 것을 보면 원래 식성이었던 것이다. 나는 식성이 빵이나 떡은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 터라 신혼 초에 아내가 식사를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아내는 떡과 빵을 잘 사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먹을 기회도 없어지게 되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빵은 애들 핑계로라도 가끔 먹을 수 있었으나 떡은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다 보니 그러지도 못하였다.
예전에는 백일이나 결혼식 잔칫집에 가면 상차림에 떡은 빠지지 않는 필수 요리였다. 상 위에 있는 떡을 보면 젓가락은 가지 않으면서도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곤 하였다. 한 번은 망설이다 주인에게 떡을 좀 싸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의아하게 쳐다보는 주인에게 아내가 떡을 좋아하는데 먹을 기회가 없어서 그런다고 하니 웃으면서 봉지에 떡을 싸주었다.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조차 가벼웠다. 떡을 받아 들고 무척 고마워하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떡을 싸 달라고 말할 때의 멋쩍고 쑥스러움은 눈 녹듯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후에는 잔칫집에 갈 때마다 떡을 싸오곤 하였다. 요즘에는 잔치 음식을 뷔페로 하다 보니 떡을 싸오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렇게라도 좋아하는 떡을 먹을 수 해 주었던 소소한 행복마저 누리지 못하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객지 생활을 많이 하면서 밥을 챙겨 먹는 일은 매번 고민되고 어려운 문제였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밥을 해 먹겠다고 덤비곤 한다.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혼자 먹자고 밥솥에 밥을 하고 국도 끊이고 반찬을 챙겨 먹는다는 것도 쉽지 않고, 설령 먹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설거지는 정말 하기 싫다.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손을 든다. 무척 그럴싸한 변명거리를 만들어 합리화를 시키면서 끼니 모두를 사 먹기 시작한다. 이 정도의 세월이면 매 끼니를 챙겨주는 사람의 수고로움을 알만도 한데 집에만 돌아오면 밥상을 받은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여기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운동도 많이 하지만 먹는 것에 대한 중요성도 인식하면서 뱃살의 주범인 탄수화물 덩어리로 알려진 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밥의 양을 조절하면서 식사로 꼭 밥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가끔 아내가 텃밭에서 채소를 뜯어 샐러드를 만들어주곤 한다. 막 뜯은 채소라서 신선하고 식감도 좋아서 맛있게 먹곤 하는데, 혹여 아내가 나의 말을 오해라도 할까 봐 맛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며칠 전엔 아내가 외국에 다녀오면서 올리브 오일을 사 왔다며 다양한 야채에 방울토마토, 바나나를 섞고, 그 위에 치즈와 아몬드를 얹고, 마지막으로 오일을 뿌려서 만든 샐러드와 직접 만든 블루베리 잼을 바른 유기농 식빵으로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준비도 많이 해야 하고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결코 밥과 국을 준비하는 것보다 쉬워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건강을 위해 준비해 준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더군다나 정말 맛있었다. 접시에 묻은 오일까지 식빵으로 싹싹 닦아 먹었다. 아내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왜 맛있다는 말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듯했다.
“괜찮네.” 나의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