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눈을 떴다. 늦지 않게 가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다. 대충 아침밥만 차려 먹고 머리도 감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집을 나선다. 집 앞에는 이발소가 두 곳이 있다. 군산에 와서 다니기 시작한 이발소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이발소로 가 볼 생각으로 일찍 나선 것이다. 이발소 앞에 다다르니 나보다 성질 급한 손님이 벌써 와서 이발 중이다. 출근 전에 이발을 마치려면 시간이 촉박한데 살짝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이번에 이발소를 바꿔 볼 마음을 먹고 왔던 터라 이발소 안으로 들어갔다.
어릴 적엔 머리를 깎을 때 이발소를 이용했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발소의 머리는 왠지 세련되어 보이지 않고 나이 든 어른들이 다니는 곳이라는 생각에 다른 친구들처럼 미용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미용실의 이발은 정말 간단하다. 전기 이발기로 쓱쓱 머리를 깎고 머리를 감겨준다. 이에 비해 이발소는 손이 많이 간다. 머리를 깎을 때 수동 이발기와 가위를 이용하여 일일이 손질을 하고 그다음 면도를 하고 머리를 감겨준다. 그러다 보니 미용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왠지 더 정성이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40대 중반을 넘어설 무렵, 어머니는 어디에서 머리를 깎는지 물어보셨다.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뭔가 말씀을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물음이었다. 어머니는 미용실에서는 남자 머리를 대충 기계로 쓱쓱 밀고 만다고 하시며, 자고로 사회생활하는 남자들은 첫인상이 중요한데, 그중에서도 머리 부분은 남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이니 정성스레 손질을 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소중한 아들이 전동기로 쓱쓱 미는 미용실보다는 한 올 한 올 손으로 잡고 가위로 정성스레 깎아 주는 이발소에서 깎기를 바라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기에 다시 이발소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여러 번 근무지도 바뀌고 이사도 하게 되면서 이발소도 거주지에 따라 옮기게 되었다. 이발소는 미용실에 밀려 사양 직종으로 많이 있지도 않고 대부분 연세가 있는 분들이 부인과 같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강릉에서도 부부가 운영하는 이발소에 다녔는데, 면도는 주로 아주머니가 담당하였다. 가끔 아저씨가 면도를 하는 날이면 정성이 과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너무 심하게 하여 안면이 얼얼하여 아저씨만 있는 경우는 피하곤 할 정도였다. 언젠가 면도를 좀 살살해달라고 부탁을 하자 그때는 살살하였으나 다음번에 가니 도로 마찬가지였다. 이발소를 옮길까 고민도 하였으나 딱히 마땅한 곳이 없어서 면도할 때마다 곤욕이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청주에 있을 때도 직장 근처 이발소를 다녔다. 한 번은 집에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에 있다가 이발소 아저씨를 만나게 되었다. 연유를 들어보니 청주에서 이발소를 하다가 전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정리하지 못하여 이발소에서 숙식을 하다가 휴무일에만 전주로 간다고 하였다. 그렇게 서로의 사생활까지 알게 되면서 객지 생활하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매우 친하게 지냈던 곳이었다. 그분은 내가 청주를 떠날 때까지 이발소를 운영하였는데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전주 어디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을 텐데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 못내 아쉽다.
전주에는 오랫동안 다닌 이발소가 있다. 그곳도 부부가 운영을 하는 곳인데, 부부 모두 말이 거의 없다. 이발소에 들어가면 왔냐는 인사도 없다. 이발을 하는 내내 아무런 대화도 없다 보니 이발소는 머리카락 자르는 소리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만 있을 뿐이다. 계속 다니다 보니 이발을 어떻게 해 달라는 말도 할 필요가 없어 어느 날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간혹 나이가 지긋하고 오랜 단골손님으로 보이는 분들과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그것도 필요한 말만 한다. 오랫동안 다녀도 데면데면 대하는 상황이 바뀔 것 같지 않아 다른 이발소를 몇 곳 다녀보았으나 이내 다시 찾곤 한다. 이발 실력만은 어느 이발소보다 좋다 보니 침묵의 어색함을 감수해도 맘에 드는 머리 형태를 유지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에서다.
군산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군산에서도 다니는 이발소가 생기게 되었다. 그곳도 부부가 같이 운영하는데, 두 분 사이가 좋아 그곳에 가면 내 마음마저 따뜻해지는 것 같아서 좋은 곳이다. 아침 일찍 손님이 없는 날에는 두 분이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정겹고 행복해 보인다. 이곳은 이발은 마음에 드는데 염색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얼굴 여기저기에 염색약이 묻어 지우는데 고생을 했다. 아버지를 닮아 흰머리가 일찍 나기 시작하여 염색을 한지가 오래되다 보니 이발만큼이나 염색도 신경을 쓰는데 조금 아쉽다.
새로 찾은 이발소 문을 들어서자 이발하는 아저씨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서 오라는 인사만 한다. 소파 하나에 이발 의자 세 개만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었다. 소파에 앉아 아침 뉴스를 보며 손님과 아저씨의 대화를 들어보니 꽤나 오래 알고 지내는 사이로 보였다. 손님의 연세도 상당해 보이는데 이발하는 아저씨에게 형님이라고 했다. 이발을 마치고 머리를 감겨주기 위해 세면대로 가는 아저씨의 발걸음이나 손놀림이 더디고 둔했다. 여태껏 만난 이발사들 중에 가장 연세가 많아 보였다. 바쁜 시간이라 염색은 하지 않고 이발만 하였다. 머리를 맡기고 있는 동안 이 연세에도 일 하시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젊은 손님들은 조금 죄송스러운 마음에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연륜이 있어서인지 이발한 모습은 마음에 들었다.
산뜻하고 정갈하게 다듬어진 모습으로 이발소를 나선다. 이발한 모습이 맘에 들면 며칠 동안은 거울을 보면서 기분이 좋다. 혹여 맘에 들지 않으면 다음에 깎을 때까지 머리에 신경이 쓰인다. 사람의 외모는 타고나는 거라 성형을 하는 방법이 아니면 싫어도 달리 어찌할 수 없고, 나이가 들어감에 세월의 흔적이 신체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도 어찌할 수 없다. 나의 외모를 가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투자는 머리를 잘 다듬는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오늘도 나를 멋진 신사로 만들어 줄 마술사를 찾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