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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Oct 16. 2019

금강 하구에서

    

  해안가 물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린다. 멋지게 차려입은 라이더들이 앞질러 스쳐 지나간다. 아직 경력이 일천한 나는 질주보다는 주변 경관이나 멀리 도심 불빛들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에 닿으면 굴레에서 벗어난 것처럼 기분이 상쾌해진다. 달리는 길 왼편에 위치한 바다 풍경은 이곳이 군산이란 걸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저물어 가는 금강 하구에 떠 있는 배들을 보니 아직도 일이 남아 집에 가지 못하는 삶의 고단함이 전해 온다. 군산에서 바라보는 서천 하늘의 노을빛은 붉다기보다 검푸르고 진회색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금강하구둑을 뒤로하고 한참을 달려 나포 삼거리에 다다르면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주위가 어두컴컴해진다. 라이더들도 본격적인 야간 라이딩을 위해 자전거의 라이트를 켜기 시작한다. 나포 삼거리는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라 퇴근 후에 나서기에 부담이 없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언젠가 대청댐까지 종주를 하리라 다짐해 본다. 


  군산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무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자전거 타기에 더없이 좋은 금강 자전거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금강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 길은 인도나 차도와 분리되어 있는 전용도로여서 야간 라이딩을 즐기기에 크게 위험하지 않다. 오가는 라이더들을 만나면 친근하고 반갑다. 돌아오는 길은 완전히 깜깜해져 자전거의 불빛만 라이더의 위치와 이동 속도를 가름할 수 있게 해 준다. 


  금강 하구의 바닷물이 빠지자 갯벌 위에 덩그러니 올려 있는 배들의 모습이 인적 없는 섬처럼 외롭다. 누군가는 갯벌 위에 올려 있는 배를 보고 관광객을 위해 장식용으로 어선을 설치해 둔 것 같다며 사뭇 진지하게 추론을 하기도 하였다. 후에 견인선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새우잡이 멍텅구리 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바다에 갇힌 배의 모습이 아버지의 과거를 보는 듯 아리었다. 


  평생 봐 왔던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기름때 낀 작업복 차림이었다. 자식 결혼식 날 외엔 양복을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옷은 깨끗하기만 하면 된다며 반듯한 옷 한 벌 제대로 없이 허름한 차림으로 평생을 사셨던 분이다. 어린 시절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일찍 공장 일을 배워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결혼 후엔 빈손으로 출가하여 한 가정을 꾸리며 하루하루 버거운 삶을 지탱하셨다.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니 멍텅구리 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감당하기 힘든 멍에를 지고 평생을 바다에 갇혀 고되고 힘든 일상을 버텨내야만 했다. 자식에게만은 멍텅구리 배와 같은 처지를 남겨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 한편 자신을 바다에서 꺼내 줄 견인선이 되어 주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르겠다. 고장이 나거나 폐선이 되어야만 견인선에 끌려 육지에 상륙할 수 있는 멍텅구리 배처럼 아버지는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질곡의 바다에서 평생을 사시다가 생을 마감하고서야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인도를 따라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다정한 부부의 모습도 보이고,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도 보이고, 운동복을 차려 입고 힘껏 달리는 젊은이들도 있고, 반려견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걷는 어르신들도 있다. 모두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가을 날씨를 만끽하고자 소파의 달콤한 유혹을 떨치고 나왔을 것이다. 정말 잘 나왔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듯 걷는 모습들이 밝고 즐거워 보인다. 이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마음으로 서로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집에서 5분 거리도 되지 않는 곳이지만 금강 하구에 오면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을 때 찾는 곳이어서 그런가 보다. 집 앞 편의점에서 커피 한잔을 마주하니 가을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가을 풍경은 그 자체로 어느 카페의 귀한 소품이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보다 멋스럽다. 내일도 아버지와 함께 이 길을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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