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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Dec 01. 2019

지금 몇 시예요

  “프로게이머요”, “인테리어 디자이너요”, “조경 설계사요”, “헤어디자이너요” 학생들의 꿈이 정말 다양했다. 예전 같으면 선생님이나 과학자, 군인, 공무원과 같이 일반적인 직업을 말할 텐데 요즘은 자기 주관도 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모자가 어울리지 않는 두상에 대한 조언을 들어 볼 요량으로 헤어디자이너가 꿈이라는 학생에게 나의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어보았다. “선생님의 머리는 옆으로 넓고 커서 옆 머리카락은 짧게 치고” 등등.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확히 나의 단점을 집어내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까지 사뭇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다. 여기저기서 소리 죽여 웃는 해맑은 아이들을 보면서 당차고 꾸밈없는 모습이 부러웠다. 


  두 달 전쯤 한 대안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익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부 직원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문지식에 대한 강의는 해봤어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처음이라 쉽게 한다고 하기가 어려웠다. 선생님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특별히 정해진 주제는 없고 인생 선배로서 시험이 끝난 고등학생들의 직업 선택이나 앞으로의 인생 설계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면 된다면서 꼭 해주면 좋겠다고 하였다. 유명 인사도 아닌 사람이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어서 일단 한다고 했다.


  승낙을 하고 나니 어떤 말을 할 것인지 주제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어떤 내용을 이야기해야 나와 같은 아제의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함께 소통할 수 있을지 막막하고 어려웠다. 몇 달 전에 청소년들의 특성에 대한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90년생은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정직하거나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선뜻 이해가 되거나 와 닿지는 않았다. 아내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변하더라도 진심은 통한다면서 청소년을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을 담아 솔직 담백하게 말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정했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우레 같은 박수로 환영해 주어 순간 당황했다. 먼저 학교에서 자랑하는 공연팀의 열정적인 무대가 있었다. 잠시 어리둥절한 시간이 지나고 약간 긴장한 상태로 학생들 앞에 섰다. 이런 나의 심정을 알아챘는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주고 관심을 표해주면서 긴장감도 사라지고 어느덧 학생들과 하나가 되어갔다. 


  꿈이 무엇인지, 그 꿈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자신의 꿈이 있다고 하는 학생과 아직 모르겠다고 하는 학생이 반반 정도 되었다. 시험이 끝난 후라 결과에 대한 불안함과 앞으로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은 모든 학생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고민이기도 했다. 나도 그때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많이 힘들어했었다. 


  내가 꿈을 가지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곁에서 보면서 사회에서 소외된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변호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법대에 진학하여 사법고시를 보았으나 연속 낙방을 하면서 변호사의 길은 접어야 했다. 그래도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른 길을 선택하여 나의 꿈을 실천하며 30년을 살았다. 무고한 사람이 없도록,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피해를 입은 사람이 회복되어 정상적인 생활할 수 있도록, 무전유죄가 아닌 모든 사람이 법 앞에 공정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이번 시험 점수가 낮아서 원하는 대학이나 전공과를 가지 못해도, 설령 대학을 진학하지 못해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 당장 원하는 방향대로 되지 않았다고 좌절하거나 꿈마저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가는 길은 무수히 많다. 어떤 한 길을 정하였다가 실패하였다고 주저앉지 말고 내게 맞는 다른 길을 찾아서 새롭게 가면 되고, 가는 도중에 난관에 봉착하거나 방해물을 만나면 궤도를 수정하면서 꾸준히 가다 보면 틀림없이 자신이 꿈꾸던 곳에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인생 80년을 산다고 할 때 여러분의 인생 시계는 지금 몇 시를 지나가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고3이면 새벽 6시도 되지 않았다. 해가 막 떠오르며 세상이 밝아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한번 켜고 세수하고 엄마가 챙겨준 따뜻한 밥을 먹고 현관문을 열고 새로운 세상으로 막 나아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포기나 실망이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홀로 서는 인생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지금이 얼마나 설레고 가슴 벅차고 기대되는 순간인지 본인들은 모를 것이다.


  나의 인생 시간을 계산해보니 오후 6시가 되어간다. 일상에선 해가 지고 귀가를 준비하는 퇴근 시간이지만, 나는 인생 2막의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은 새로운 길을 시작하기에 전혀 늦지 않다.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위로와 행복을 함께 나누기에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다. 오전 6시만큼이나 기대되고 설레는 순간이다.


  퇴근하고 연습실에서 통기타 연습을 한다. 집에 와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헬스장에 가서 적당히 땀이 밸 정도로 운동을 하였다. 헬스장을 나와 인근 단골 카페에서 노트북을 꺼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아직 카페에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좋다. 오늘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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