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떨어져 혼자 살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특히 아내와 싸우고 나서 불편함과 어색함에 잠시 떨어져 있고 싶어도 마땅히 갈 곳이 없을 때는 그런 생각이 더 절실해진다. 아내의 잔소리가 없는 공간에서 소파에 마음대로 누워도 있어 보고, 술 먹고 늦어도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늦게 일어나도 혼나지 않는 그런 집, 생각만 해도 근사하다.
새로운 근무처로 오면서 관사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거리상으로 보면 딱히 관사에 있지 않고 출퇴근을 해도 되지만 이번에는 관사 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통근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그러다 보면 직원들보다 먼저 퇴근을 하거나 늦게 출근을 해야 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업무에 충실하기도 어렵고 책임감도 떨어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차량을 운전하고 다니려 하니 야근이나 회식이 있는 날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직원들과 좀 더 생활하며 소통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다.
발령을 받고 아내에게 내가 관사 생활을 하면 어떻겠냐고 물으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이건 뭐지? 그렇지 않아도 관사 생활을 할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안된다며 집에서 다녀야 한다고 잡을 줄 알았는데 약간 서운했다. 그래도 이미 말도 꺼냈고 한번 해보고도 싶어 주중에 한두 번 정도 관사를 이용할 요량으로 이불과 약간의 생활 도구만 짐을 챙기려고 했다. 곁에 있던 아내는 괜찮다는 나를 한사코 도와주겠다며 이것저것 짐을 싸서 차량 뒷좌석과 트렁크까지 빈틈없이 실었다. 아내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냉장고에는 한 달 동안 먹기에 충분한 반찬이 쌓였고, 라면이며 생수며 속옷이며 수건이 이재민의 숙소처럼 가득 넘쳤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애매한 심정으로 관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관사 생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국 5개 도시에서 6년 넘게 객지 생활을 했으니 관사 생활은 익숙해 있는 편이었다. 강릉에서의 객지 생활은 시작부터 우여곡절에 힘이 들기도 하였고 전주로 다시 오기까지 청주를 거쳐 3년이란 세월이 걸렸으니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처음 강릉에 가서는 너무 멀리까지 온 것에 대한 불만으로 화도 나고 생활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에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상당 기간 경포호수의 새벽을 가르며 객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바로 전주로 오지 못하고 청주를 거치면서 시내를 가르는 무심천은 이것도 팔자려니 체념하며 마음 비우는 훈련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되었다. 그 후 어지간한 일로는 화를 내지 않는 나의 심성은 강릉과 청주에서 지내면서 터득한 마음 비우기 덕분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왜 그리 힘들고 싫었는지 모르겠다. 토요일에 와서 잠시 가족과 지내다가 일요일이 되어 다시 근무지로 가야 할 시간이 되면 정말 헤어지기 싫고 집을 떠나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집에 와 있어도 딱히 아내를 위해 집 안 일을 해주거나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아이들도 어린데 아내 혼자 살림과 육아를 고스란히 감당하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도 들고,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야 하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아내에게 속내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번에 관사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은 진짜 이유는 아내에게 시간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나와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다 보니 결혼 생활 동안 한시도 자신의 시간은 없었다. 마침 애들도 현장 실습과 군대 생활로 집에 없으니 나만 독립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진정한 자유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나도 그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했던 관사 생활이 아닌 나의 선택에 의한 관사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내가 있는 집과 아내가 없는 집의 이중생활을 한 지도 1년이 되어 간다. 군산에 혼자 있으면 간단한 식사 후에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동호회 활동을 하며 좋아하는 기타를 치거나 운동복을 차려입고 금강하구 둑으로 자전거를 타러 가기도 하고, 커피숍 한쪽 구석에 앉아서 노트북에 글도 쓰곤 한다. 자는 시간도 마음대로 정해서 할 수 있고, 아침에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조금 늦게 일어날 수도 있다. 매일 장거리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니 피곤함도 덜하고 운전의 부담도 적다. 더욱 좋은 건 직원들과 회식을 하거나 멀리서 친구들이 가끔 찾아와서 늦게까지 술자리를 하여도 다음날 음주운전의 부담이나 출근의 걱정이 없다. 한 번은 아내와 다투고 옷가지를 챙겨 군산으로 간 적도 있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처럼 금방 화해를 하였지만 잠시라도 도피처가 있다는 사실이 철부지처럼 좋기도 하였다.
모든 게 완벽한 것 같은데 뭔가 허전했다. 이틀 정도 집에 가지 않고 3일째가 되면 안절부절못하고 하루 종일 불안하다. 오후가 되면 도저히 참지 못하고 슬그머니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딱히 용건도 없이 별일 없냐 느니, 필요한 게 없냐 느니 물어본다. 그럴 때면 아내는 군산에서 별일이 없으면 집에 오라고 한다. 아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신이 심심해서 그러지?” 한다. 아내는 웃으며 그런다며 와서 놀아 달라고 한다.
옷가지를 챙겨 집에 가는 길은 활기차다. 진수성찬은 아니어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로 지은 밥에 내가 좋아하는 아욱국과 된장찌개, 계란 프라이로 정성 들여 차려진 밥상이 기다리고 있다. 단 둘이 오붓한 식사를 마치고 체련공원으로 산책 겸 운동을 간다. 아내는 시를 외우고 나는 노래를 부르며 달빛 아래를 거닌다. 얼굴 마사지에 팩까지 호사를 마치면 잠자리에 든다. 몇 달이나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그간 있었던 일들을 풀어내는 아내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한다.
다시 출근을 위해 군산으로 향한다. 창문을 내리고 신선한 아침 공기와 막 퍼지기 시작한 햇살을 차 안에 가득 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전군가도를 신나게 달린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아내 곁에서 하루만 쉬고 나면 충전이 되어 새로운 힘이 솟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아내가 있는 집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