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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Dec 07. 2019

어머니의 마음

   

  “내장산 가본 지도 오래됐네.”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올해 단풍 시기에 대해 나오자 말씀하셨다. 나도 내장산을 마지막으로 가본 지가 언제인지 생각해 본다. 아이들 초등학교 때 갔다 오고 그 후로는 안 가본 것 같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나 보다. 어머니의 말씀이 귓전에 맴돌면서 올해는 꼭 모시고 가리라 마음먹었으나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내장산 단풍 절정기를 놓치게 되어 내장산이 아닌 순창 강천산으로 일정을 변경했다. 평일 시간을 내서 가고 싶었으나 휴가를 내지 못해 주말을 이용해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어머니를 모시고 순창으로 향했다. 날씨도 좋고 차량도 별로 막히지 않고 어머니의 기분도 조금 들떠 있는 듯 보였다. 강천산에 거의 다다를 즈음 이정표에 내장산으로 가는 안내판이 보였다. 잠시 망설임이 들다가 어렵게 나선 길이니 이왕이면 어머니가 가고 싶어 한 내장산으로 가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어머니도 내심 내장산에 가고 싶으셨는지 무척 좋아하셨다. 이른 시간이고 절정기가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30분 정도 기다리다 주차를 하고 어머니와 둘이 단풍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두세 시간 정도를 걷는 어머니는 사찰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자고 하였다.


  내가 부모님을 따라 내장산에 간 것은 초등학교 때 가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당시만 하여도 차량이 많지도 않았고 당연히 승용차도 없던 때라 어디를 간다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과정도 힘든 일이어서 일 년에 한 번이나 나갈까 하였다. 아버지를 따라 터미널까지 걸어가서 표를 끊고 시외버스를 타고 내장산 입구에 도착하였다. 단풍철이라 내장산 입구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지금처럼 등산복이 널리 퍼지지는 않았어도 울긋불긋한 옷들을 입은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남아 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내장사로 향하는 평평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 아버지는 옛날 사람이라 가족을 챙기는 것은 어머니의 일로 여겨 혼자 씽씽 앞서가셨다. 어머니는 구경은 고사하고 무리 속에서 4남매의 손을 놓치지 않고 챙기기에 바쁘셨다. 철없던 우리는 단풍 구경에는 관심도 없이 길에서 파는 풍선 같은 장난감이나 솜사탕 같은 먹을 것만 보면 사달라고 보채며 징징거렸다. 사찰에 다다르니 어머니는 이미 파김치가 되어 지쳐 있었다.


  아버지도 딱히 단풍 구경에는 관심도 없이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나온 것처럼 보였다. 요즘도 어머니는 다른 집들은 계절마다 꽃구경도 가고 물놀이도 가고 단풍 구경도 다니는데 우리 집만 놀러도 다니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시곤 한다. 내 기억에도 우리 가족이 여행은 물론이고 당일로도 어디를 간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날도 어머니가 수차 재촉을 하여 단풍 구경을 나온 것임이 틀림없었다. 어머니는 잠시 한숨을 돌리고 우리 손을 잡고 사찰 구석구석을 다니며 단풍이 참 곱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셨다. 그제야 어린 나의 눈에도 제대로 물든 빨간, 노랑, 갈색 잎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날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거닐면서 본 잎새들은 지금까지도 가장 멋진 단풍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가 구경을 마치기도 전에 아버지는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쉬움이 남는지 아버지가 앞서서 사라져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천천히 구경하며 내려갔다. 내장산 입구를 지나 터미널로 가는 도중에 많은 식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의 권유를 뒤로하고 급한 걸음을 재촉하는데 식당 천막 아래에서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먼저 내려온 아버지가 고향 친구들을 만나 막걸리를 드시고 있었다. 아버지는 약주를 좋아하셔서 한번 시작한 술자리는 쉽게 끝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날도 친구들과 오랫동안 술자리를 하였음은 당연했다. 함께 간 가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리가 파할 때까지 그곳에 잡혀 있어야 했다. 돌아오는 길은 시외버스가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도착할 때까지 꼼짝하지 못하고 끼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약주를 한 잔씩 하신 아저씨들로 인해 버스 속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고약한 냄새와 소란으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야 할 단풍 구경은 돌아오는 길의 고행으로 힘든 여정이 되어 버렸다. 밤늦게 집에 도착한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시는 단풍 구경을 가지 않겠다고 공언하셨고, 그 후 가족이 함께 단풍 구경을 간 기억은 거의 없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오롯이 어머니의 단풍 구경이 되기를 바랐다. 보폭도 맞추고 어머니가 눈길 주는 곳에 나의 눈길도 머물며 유독 꽃을 좋아하시는 취향에 맞게 길가에서 만나는 꽃송이도 빠짐없이 마주하며 걸었다. 어머니는 꽃마다 이름을 불러주며 고운 단풍마다 예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1인 미디어 시대답게 여기저기 사진 찍는 사람들의 모습도 단풍 구경만큼이나 흥미로운 구경거리였다. 어머니에게도 사진을 권하였으나 늙으면 사진도 밉게 나온다며 한사코 싫어하시는 것을 내가 찍고 싶어서 그런다며 간신히 두 장을 건졌다. 멀리서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를 따라 발길을 재촉하니 세 명이 잔디밭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나보다 젊지만 제법 나이가 있는 분들이 하는 버스킹이라 발길을 멈추고 들어 보았다. 관중을 사로잡는 건 역시 트로트였다.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를 부르기 시작하자 한순간 관객의 반응은 최고조가 되었다. 어머니도 트로트를 좋아해서 그 자리에 서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잠시나마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나도 가끔은 고집하던 장르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도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웅전 앞에 섰다. 어머니의 시간을 드리기 위해 자리를 벗어나 망루에 올랐다. 망루에선 사진전을 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 대웅전에 가보니 어머니는 접수처 앞 마루에 앉아 계셨다. 내장산에 오랜만에 오시니 어떠냐고 물어보니, “너의 아버지도 오셨으면 좋아했을 텐데”라고 한다. 어머니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셨다. 그래도 가정에 좋은 일이 생기거나 맛있는 음식을 드시거나 좋은 곳에 가면 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않으신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온종일 뭔가 잃어버린 것 같고 허전했다. 어머니가 그리 오랫동안 찾지 않던 내장산에 가고 싶다고 하신 이유를 생각해 본다. 평생을 가슴에 묻고 사셨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버리고 싶으셨는지 모르겠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 보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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