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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Dec 15. 2019

겨울나기

   

  첫눈이 오면 마음이 바쁘다. 첫눈을 보고 설레는 마음도 잠시, 겨울나기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주택에 살면 겨울을 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그렇다고 한적한 시골에 있는 전원주택처럼 땔감이나 석유를 준비하거나 정화조를 비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는 곳은 도시가스와 상하수도, 정화 설비가 갖추어져 있는 지역이라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은 소위 날망이라고 하는 곳에 위치한 허름한 집에 살았다. 슬레이트 지붕에 블록 벽으로 지어져서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웠으며, 대문은 함석으로 만들어져 바람이 불면 요란하게 흔들렸다. 기온이 내려가면 겨울준비를 위해 부모님의 한숨 소리가 커지곤 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쌀과 연탄을 들이는 일이다. 겨울이 시작되어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가파른 경사에 봄까지 녹지 않는 빙판으로 쌀과 연탄의 배달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쌀이야 가마니로 사기 때문에 가게 아저씨가 부엌까지 지어다 주지만, 연탄은 가게 아저씨 혼자 수레로 실어 오므로 날짜를 조율해서 우리 가족들도 모두 동원되어야 한다. 가게에서부터 수레를 밀고 대문 앞까지 오면 그다음부터는 모두 옆으로 줄을 서서 한 장 한 장 넘겨주며 부엌까지 옮겨야 한다. 지금이야 자원해서 연탄 봉사에 참여도 하지만 그땐 왜 그리 싫었는지 모르겠다. 연탄까지 부엌에 가득 차면 절반은 준비를 한 것이다.


  다음은 겨울 내내 먹을 김장을 하여야 한다. 배추를 나르고 씻고 절이고 버무는 일도 쉽지 않다. 그때는 먹을 게 김치뿐 이어서 김장을 하면 150포기 정도는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많은 김장을 했는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김장을 담으면 다음으로 문풍지를 발라 심한 외풍을 막고 수도꼭지는 옷가지와 비닐로 감싸 안아 겨울에도 얼지 않도록 단속을 해야 한다. 이렇듯 하나하나 빠짐없이 겨울 지낼 준비를 하다 보면 마당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가곤 하였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겨울이 더 길고 춥게 느껴졌던 기억이다.


  아파트에 살면서부터는 겨울 준비가 크게 많지 않았다. 일단 난방시설이 기본으로 갖추어져 있어서 연탄 준비나 문풍지 바르기, 수도꼭지 싸기를 할 필요가 없고, 생활이 좋아져서 쌀을 미리 사 둘 필요도 없다. 단지 김장은 겨울을 나는데 꼭 필요한 반찬이므로 준비는 해야 하지만 주택처럼 밖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실내에서 하고 수량도 많지 않아서 굳이 겨울 준비라고 할 것도 없었다.


  다시 전원주택에 살기 시작하면서 겨울 준비를 하게 되었다. 옛날 주택에 살던 때와 같이 생활을 위한 준비를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나, 새로운 겨울 준비를 하여야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제일 먼저 강아지의 난방이 걱정거리이다. 원래 집안에서 키우기도 했고 품종이 추위를 잘 타다 보니 겨울 문턱에 들어서면 아내의 걱정거리가 시작된다. 매년 이런저런 대비를 해주기는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처량하고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올해는 어떻게 해주어야 괜찮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뒤지다가 텃밭용 작은 비닐하우스를 판매하는 것을 보고 두 개를 구입했다.


  주말 아침 큰애와 같이 본격적인 겨울 준비를 시작했다. 비닐하우스를 조립하고 강아지 집을 안에 넣고 바닥에 이불을 깔아 주니 강아지도 좋았는지 냉큼 들어와 앉는다. 이제부터 전지를 해야 한다. 작은 마당이라 나무라고는 미니 사과나무 두 그루와 배롱나무 한 그루가 전부지만 초보 일꾼에게는 큰일이다. 어느 부분을 잘라줘야 하는지 요기저기 재면서 전지를 하느라 한참이 걸렸다. 전지를 하니 깔끔한 모습이 마음까지 산뜻했다. 다음은 추위를 잘 타는 화초나 꽃나무의 월동 준비를 해주어야 내년에도 꽃을 볼 수 있다. 작년까지는 데크에 배치하여 추위를 견뎠는데, 올해는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데크에 다 배치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궁여지책으로 추위에 다소 강한 식물은 마당에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그 안에 넣어 겨울을 나기로 하였다. 비닐하우스는 조립식이라서 별 어려움이 없이 설치가 가능했다. 화분들을 비닐하우스에 넣고 나니 마음마저 따뜻해졌다.


  다음으론 김장을 해야 한다. 수돗가와 마당이 있다 보니 좁은 아파트에서 하는 것에 비해 물 쓰기도 자유롭고 버무리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입주 첫해는 땅을 파서 항아리를 묻고 김장을 재기도 하였으나 불편함이 많아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다가 최근에는 저온창고를 설치하여 훨씬 수월하고 편해졌다. 아무리 환경이 편해졌다고 해도 김장을 하는 것은 여전히 번잡하고 힘들다. 아내는 다른 힘든 일들은 줄이려고 하는데 김장만은 그만둔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딱히 모르겠지만 가족이 겨울 동안 먹는 음식이니 김치만큼은 손수 담아 먹게 해주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덕분에 세월이 갈수록 포기 수는 줄었어도 여전히 김장김치를 먹을 수 있어 다행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겨울준비가 귀찮거나 부담스럽지가 않다. 약간의 수고로움으로 미리 대비를 하면 눈발이 내리는 혹한기에도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다는 생활의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고단한 시기가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사회생활에서 물러나야 하고 몸도 서서히 쇠약해지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질 것이다. 삶에 겨울이 오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조금씩 준비는 하고 있으나 처음 맞는 겨울이라 두렵기도 하다. 겨울의 문턱에서 하나라도 빠진 게 없나 한 번 더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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