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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Mar 29. 2020

추억의 수학여행

  친구들이 저녁 늦게 한자리에 모였다. 아무도 선뜻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당장 내일 떠나야 하는데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했다. 어떤 결론도 쉽지 않았다. 결국 내가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한참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드디어 결론을 냈다. 내일 진행하기로 했던 행사를 취소했다. 


  졸업 후 고등학교 동창회장을 맡아 일을 한 적이 있다. 기존의 방식에 변화를 주어 역할도 세분화하고 주요 행사도 부회장들이 맡아서 추진하고, 새로운 활동도 발굴하여 진행하면서 재미있게 했다. 임기 동안 3학년 때 담임선생님들을 모두 모시고 스승의 날 행사도 하고, 고산 휴양림에서 1박 2일 가족 야유회도 하고, 친구들과 매주 인근 명산도 등반하고, 동창생들의 사진과 연락처를 수집해서 동창 수첩도 새롭게 제작하고, 동창 모임도 두 달에 한 번씩 꾸준히 진행하면서 동창들과의 유대도 쌓여갔다. 친구들도 잘한다고 응원해주고 격려해 주며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었다. 특히 스승의 날에 담임선생님들을 모두 모시고 스승의 날 행사를 하고 뒤풀이로 각 반별로 반창회도 가졌던 일은 지금까지도 친구들이 감동스러웠다고 말하는 추억거리로 남아 있다.


  내친김에 졸업 20년을 기념하여 당시 유행하던 추억의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다. 졸업한 지 20여 년이 지나 교복을 빌려 입고 예전에 갔던 경주로 1박 2일 수학여행을 다시 떠나기로 한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함께 하겠다는 친구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쉽게 모집이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나이를 간과한 것이다. 나이 40이면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무척 바쁜 시기였는데 가정의 달인 5월에 그것도 가장 혼자 1박 2일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 쉬울 리가 없었다.  


  지금이야 집에서도 반기지 않아 어디 나가서 놀 구실이 없나 찾아다니는 신세다 보니 누가 번개라도 치면 어디서 그렇게 많은 친구들이 나타나는지 놀라울 정도다. 야심 찬 시작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관광버스와 숙소를 예약하고 경주 문화해설사도 섭외하며 진행을 하였다. 모으고 모아 최종적으로 참가하기로 한 친구가 24명이 되었다. 적은 인원이었지만 일단 세운 계획이니 출발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출발일이 다가오자 하나둘 사정이 있다며 취소를 하기 시작했다. 출발 전날엔 15명만 남았다. 집행부 친구들과 모여 상의한 끝에 결국 출발을 하지 못하였다. 


  아직도 그때 가지 않고 취소했던 일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고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아무리 참가 인원이 적었어도 갔어야 했다. 여러 어려운 사정에도 집행부를 믿고 함께 하기로 한 친구들은 생각하지 않고 인원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한 것이 그 친구들에게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으로 남아 있다. 가정을 두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때 출발을 했다면 살아가면서 힘들 때 꺼내 볼 수 있는 멋진 추억 사진 몇 장 정도는 남아 있을 텐데 아쉽다. 그 일이 나에게 너무 선명한 아픔으로 남아서인지 그 후론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거의 없다. 물론 결정을 할 때까지는 많은 사람들과 상의도 하고 자료도 수집하고 숙고도 하지만 결정이 된 이후에는 절대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추진하려고 노력한다. 


  작년에 어느 모임에서 단장을 맡아 콜라보 공연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참여할 회원을 모집하였으나 회원들의 의견도 분분하고 참여 인원도 너무 적어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수학여행의 아픔이 떠올라서 포기하지 않고 차분히 준비를 했다. 파트를 나눠 전문가들에게 일임하고 나는 뒤에서 전체적인 것만 잡아가며 흔들리지 않고 추진해갔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참여 인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람이 모이지 않을 거라 지레짐작한 회원들이 참여를 망설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원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참여를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결국 30명이 넘게 참여하여 성공리에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모험이고 도전이다. 더욱이 남이 해보지 않은 일을 시작해야 할 때는 더 많은 위험 부담과 두려움이 생긴다. 설령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시작은 하였다고 해도 실제 준비가 부족하거나 진행이 잘 되지 않아 도중에 포기하거나 실패할 확률도 높다. 익숙한 길, 이미 누군가 했던 일, 누구나 선택하는 방법이 쉽고 무리가 없고 편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뭔가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고, 시작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동창생들로부터 다시 동창회를 맡아서 운영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한번 했던 일을 다시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물론이거니와 나 이외도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굳이 내가 한 번 더 한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많은 고민에 고민을 한 끝에 다시 동창회장을 맡기로 했다.      


  장미꽃이 만발한 5월 어느 날, 동창생들에게 멋진 문자를 보내는 상상을 해 본다.

“드디어 내일 새벽 5시에 도청 앞에서 추억의 수학여행을 떠납니다. 시간 늦지 않게 나오시기 바랍니다. 동창회장 송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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