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켜고 부팅이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여느 때보다 지루하게 느껴진다. 모니터가 하얀 종이를 쓱 내민다. 오랜 세월 동안 매일 대하던 백지 모니터지만 오늘 주어진 종이 한 장의 공간은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예전 같으면 모니터가 하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자판 위에 얹힌 손은 익숙한 놀림으로 이리저리 뛰놀며 검은색 글자를 무수히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자판 위에 놓인 두 손은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고 처음 글자를 배우는 아이처럼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왜 글자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동안 쉽게 쓰이던 글자는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자판 위의 손을 내리고 하얀 모니터를 망연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화면이 물방울로 변해버린 지도 한참이 지났다. 직업상 20년 동안 모니터를 앞에 두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글로 작성하는 일을 했다. 긴 세월 동안 자판을 두드리며 글자를 만들고 조합을 하여 글을 쓰기는 하였지만, 정작 나의 글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말과 생각을 글로 옮기기만 했던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 본 것이 언제였나. 초등학교 시절 방학 숙제로 일기를 써보고, 아내와 연애할 때 가끔 편지를 써본 것이 전부였다. 나의 생각, 나의 이야기, 나의 느낌을 글로 써보지 않아 이리도 손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나의 글을 써보는 첫날인 셈이다. 다시 손을 올리고 나의 내면을 바라보며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한 자 한 자 글자가 글이 되어 갔다. 이제는 나의 진심을 들어줄 누군가를 위한 글을 써 보고 싶어 졌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몇 년 전부터 마음 한편에 있었으나 나와 마주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글쓰기가 미루고 미뤄 둔 숙제처럼 언젠간 해야 하는 의무가 되어 갈 무렵 직장 후배가 나를 찾아왔다. 수줍은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선배라면 좋은 마음으로 읽어봐 줄 것 같아서 가지고 왔다면서 소설 계간지를 내밀었다. 업무에 치이기도 하고 아마추어 작가에 대한 기대도 적다 보니 책상 한쪽에 꽂힌 채 좀처럼 펴지지 않고 먼지와 함께 미안함만 쌓여 갔다. 고마움에 한 줄의 서평이라도 써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대충이라도 읽어 볼 속셈으로 계간지를 펼쳐 읽으면서 나의 섣부른 선입감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금방 깨닫게 되었다. 소설의 구성도 신선하고 반전이나 기승전결, 메시지 등이 어느 유명한 소설가에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새롭게 넘치기 시작하면서 지금 쓰지 않으면 앞으로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밀려왔다.
평소 자주 이용하는 평생교육원 강좌에서 문예반을 발견하고 콩닥거리는 마음을 안고 수강신청을 하였다. 첫 수업자료를 메일로 받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며 언제나 이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과 걱정에 주눅이 들었다. 글은 일단 써야 한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용기를 내어 무조건 쓰고 있지만 아직 이리저리 흔들리며 좌충우돌 중이다.
글을 쓴 지 1년 5개월이 되어 간다. 떠오르지 않는 글감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기도 하고 고갈된 감성을 채우기 위해 휴지기를 가지면서도 매주 쓰겠다는 나와의 약속만은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 호기롭게 작가 신청을 하여 브런치 작가가 되고 브런치 북도 출간해 프로젝트에 도전도 해보았다. 청탁을 받아 부족한 글이 활자로 인쇄가 되기도 하였다. 글을 쓰며 힘들었던 과거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가고, 현재의 나를 마주하며 피하기보다 변화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글쓰기를 통해 50의 인생도 설렐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다.
마음을 열고 나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채워지지 않을 것 같던 하얀 모니터가 검은색 글자로 가득해졌다. 읽으면 읽을수록 부끄럽고 부족하여 고치기를 반복한다. 만족한 퇴고를 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지만 나만의 글을 썼다는 뿌듯함으로 첫 글의 끝내기 버튼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