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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Jun 23. 2022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곳,
중인동 마실길을 걷다


주말이면 늦은 아침을 간단히 하고 아내와 함께 중인동 동네 마실에 나선다. 중인동 주민이 된 지 8년이 되었다. 처음 이사를 와서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논밭으로 내달리는 경운기와 오토바이 소리에 적응이 되지 않아 새벽잠을 설치곤 하였다. 주말이 되어 느긋한 늦잠의 달콤함을 누려볼 요량이면 생필품을 팔러 온 만물트럭의 확성기 소리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량 소리는 자장가로 들리고, 확성기 소리는 무슨 물건을 팔러 온 사람인지 맞춰보려는 호기심이 발동할 정도로 적응이 되었다.


현관문을 나서 신발 끈을 조이고 모악산을 향해 기지개를 켠다. 예전엔 중인리가 완주군이었으나 30년 전에 전주시로 편입되면서 명칭도 중인동으로 변경이 되었다. 대문을 나서 뒤안길을 따라 올라가면 옥성골든카운티 후문에 이른다. 아파트는 중인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한눈에 중인동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아파트가 건축되면서 상하수도나 오폐수관, 도시가스와 같은 기반시설이 다른 외곽지역보다 먼저 설치되어 중인동에 사는 주민들의 삶이 일찍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면 한 평 정도 고랑으로 나뉜 대규모 텃밭이 조성되어 있다. 처음 노인복지주택으로 허가가 되어 분양을 하면서 세대별로 텃밭도 분양하였는데, 주민들이 가꾸는 채소들은 누런 개비 하나 없이 새파랗고 싱싱하여 전문가 솜씨가 부럽지 않다. 조석으로 매달려 있는 주민들을 보면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텃밭에서 수확한 야채 먹기가 쉽지 않은 우리 부부는 주민들의 텃밭이 부럽기만 하다. 


아파트 옹벽을 둘러 산책길을 걷다 보면 벼농사를 위해 물을 댄 논과 과수마다 종이 봉지가 매달린 과수원을 마주하게 된다. 농촌 생활은 해만 뜨면 할 일이 끊이지 않다 보니 여기저기 논 밭에서 일하는 주민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족까지는 아니어도 만나면 안부 정도는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니 우리도 원주민의 일원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원중인 마을은 배 과수원으로 유명하였다. 중인동의 사계절은 과수원의 변화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봄이 시작되면 겨우내 휴식을 취하던 과수원들이 잠에서 깨어나 배나무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중인동 전체가 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것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곤 한다. 지금은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여기저기 개발을 하여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과수원이 많이 남아 있다. 배꽃이 눈비처럼 떨어지고 나면 적과와 봉지 싸기로 5월 한 달은 온 동네가 시끌시끌하다.  


과수원 사이로 좁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중인 1길로 건너가는 굴다리가 나온다. 그곳은 외지인이 하나 둘 들어와서 정착을 하다 보니 마을 이름도 없고 주택도 각자 개성이 넘치고 예쁘다. 안쪽에 몇 채만 위치하고 있어 큰길에서 보면 동네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도 어렵다.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주택 한 채 한 채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산책의 소소한 재밋거리이다. 


하봉교를 지나 조금 가다 보면 완산생활체육공원이 새겨진 돌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체련공원은 중인동을 보금자리로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고, 몇 해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두 달 동안 특훈을 하였던 곳이기도 하여 우리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순례길 300킬로미터를 걷기로 계획하고 항공권을 예매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이 걷기 훈련이었다. 퇴근을 하고 오면 식사만 하고 곧장 체련공원으로 달려와 매일 10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코로나가 오기 전만 해도 해가 지면 운동을 하기 위해 체련공원을 찾는 동호인들로 매일 불야성을 이루었다. 대낮같이 환한 체련공원에서 땀에 흠뻑 젖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 조차도 건강해지는 것 같고 기분도 상쾌하여 우리 부부가 자주 찾는 곳이다. 


체련공원 내에는 어두제라는 연못이 있다. 연못 한쪽 면에는 다양한 연꽃이 견본으로 심어져 있고, 연못에는 홍색과 백색의 연꽃이 피어난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연못은 지친 시민들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휴식처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연꽃이 피면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 자주 찾아 거닐곤 한다. 아버지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새벽 일찍 금산사를 찾아 가장 큰 연등을 사서 누구보다도 먼저 대웅전 마당의 중앙에 걸곤 하셨다.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져 그리움이 더해간다. 


이쯤 되면 배고픔을 느끼기 시작한다. 주말이라 아내의 수고로움도 덜어줄 겸해서 점심은 사 먹기로 한다. 오래된 맛집이 많은 중인동 시내버스 종점으로 향한다. 종점 하면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뭔가 아련하기도 하고 고향에 온 것 같은 포근함도 간직하고 있어 좋다. 종점은 출발하는 곳이라 시간만 맞추면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고 항상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 돌아올 때도 정거장을 지나칠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편안하게 쉴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특별히 바쁜 경우가 아니고 짐이 없는 날이면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종점에 다다르니 벌써 등반을 마치고 내려온 등산객들로 북적거린다. 중인동이 모악산으로 가는 초입이다 보니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등산객의 왕래가 많다. 그래서 종점 부근에는 유독 맛집이 많다. 젊은이보다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많이 이용하다 보니 청국장이나 순대, 김치찌개, 닭볶음탕과 같은 토속 음식이 주 메뉴이다. 우리도 식당을 정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지금 중인동은 농촌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도시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 8년 전만 해도 저녁 식사를 하고 동네에 나오면 대부분의 집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어 마을 전체가 절간처럼 고요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외지인들이 들어와 주택과 상가를 지으면서 각종 편의시설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물론 생활이 편리해져 좋은 점도 있으나 뭔가 아쉽다. 편리함을 찾아서 이곳에 이사 온 것이 아닌데 날로 도시화되어 가는 중인동의 변화가 불편하다. 8년 전과 지금은 상전벽해를 실감케 할 정도의 엄청난 변화가 밀려오고 있다. 현재도 동서를 가르는 고속도로 공사와 진입로 4차선 공사가 한창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변화가 중인동에 찾아올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아직은 대문 앞에 야채나 과일을 놓고 가시는 이웃의 훈훈한 정이 남아 있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지내는 부락의 모습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 이 멋진 중인동에 살고 있는 우리 부부도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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