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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Sep 27. 2020

출간하다

  “인생이 설레기 시작했다.” 실제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설렌다. 내가 쓴 글이 활자화되어 책으로 나오게 되다니 믿기지 않는다. 설레는 것도 잠깐, 어느 순간부턴 떨리기 시작했다. 책을 출간한다는 것은 발가벗은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두렵고 무섭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치면서 문예반에 등록한 것이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매주 글을 쓰면서 나의 서랍에는 글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한 편 한 편 나의 이야기가 글로 표현되면서 나의 과거가 정리되어 갔다. 가슴 아팠던 기억들은 글을 통해 정화되어 갔고,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새겨지면서 삶의 마디마디가 하나씩 기록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독자도 생기게 되고, 글이 써지지 않은 땐 독자가 보내준 "좋아요"와 응원 문구를 읽으며 다시 글을 쓰곤 했다. 


  글이 어느 정도 쌓이자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파일에 넣어만 두기도 그렇고, 계속 쓰기만 하기도 그랬다. 그렇다고 없애자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강사로 여러 명의 작가를 길러 낸 친구에게 상의를 하니 글쓰기의 종점은 책을 출간하는 것이라고 했다. 글을 쓰면 출간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도 깔끔한 마무리가 되지 않고 계속하여 아쉬움이 남는다고 알려 주었다. 그래서 결국 모두 출간을 한다고 했다. 그간 쓴 글을 모으면 한 권의 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며 출간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고민이 깊어졌다. 지금까지야 수정이 필요하면 고칠 수도 있고, 영 맘에 들지 않으면 없애면 되었지만 인쇄가 되어 출간이 되면 나의 손을 떠나 독자의 글이 된다. 답안지를 제출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피평가자가 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시험을 잘 볼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도 없으니 망설여졌다. 결정을 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글을 모아 인쇄본을 만들어 출간 작가 몇 분에게 서평을 부탁했다. 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출간을 해도 괜찮겠다고 응원해 주었다. 옆구리 찔러 절 받는 형식이었지만 그래도 이를 핑계로 출간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친구가 소개해 준 출판사 두 곳에 원고를 보냈다. 한 곳에서는 다음 기회에 해보자고 하고, 한 곳에서는 흔쾌히 계약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친구와의 인연 덕분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기획 출판을 해주겠다고 하니 몹시 기뻤다. 출판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니 출판사 작가가 교정 교열을 봐주고, 디자이너가 책 표지와 내지의 편집과 배치를 도와주었다. 수시로 통화도 하고 메일도 주고받으며 나의 생각이 출간될 책에 하나씩 담기기 시작했다. 집을 지으며 집안 구석구석에 나의 손길이 닿았듯이 책을 출간하면서도 책장 사이사이에 나의 숨결이 스며들었다.  


  책 표지를 정하는 건 정말 힘들었다. 내가 보내준 이미지 사진과 의견을 참고로 디자이너가 5개의 샘플을 만들어 보내주었다. 모든 샘플이 일장일단이 있었다. 출간 과정에서 가장 오랫동안 고민하고 많은 분에게 자문도 구했다. 최종 2개의 샘플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했다. 요즘 트렌드에 맞는 샘플보다는 다소 고전적이지만 문학적으로 보이는 샘플을 선택했다. 


  계약부터 편집까지 2개월이 걸렸다.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즐겁고 재미있게 작업을 했다. 출판사로부터 최종 확정이 되어 인쇄에 들어갔다는 연락이 왔다. 대형 서점에도 출간 보도 자료를 보냈으니 확인해 보라고도 했다. 대형 서점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내 책이 예약 판매로 올라와 있었다. 서점 사이트에서 내가 쓴 책을 보니 실제 작가가 된 듯했다. 주말마다 노트북을 들고 카페를 전전했던 많은 시간들이 떠올랐다. 


  독자는 냉정하다. 지인들이 읽어보며 칭찬해 주고 응원해 주었던 것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잘 안다. 아무런 기대로 하면 안 된다고 다짐하면서도 한편으론 좋은 평가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솔직한 심정이다. 오래전 유명한 전업 작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작가도 첫 번째 출간에 많은 기대를 하였으나 누구나처럼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고 독자에게 호응을 받지 못한 원인을 분석하여 두 번째 책을 출간한 것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였다. 독자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니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쓰라는 충고도 해 주었다. 


  출간을 하면서 두 번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품의 주제도 정하고 젊은 작가님으로부터 지도를 받고 있다. 출간을 결심한 이유 중엔 두 번째 작품을 준비하기 위한 마음도 있었다. 글을 계속 쓰기 위해서는 나의 글에 대한 독자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 아닌 독자가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해 꼭 거쳐야 할 시험이라 생각한다. 출간이 되어 주위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지인들로부터 꼭 읽어보겠다는 응원의 연락이 오고 있다.  책이 나를 떠나 사람들의 손에 옮겨지고 있다. 이제 독자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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