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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Mar 22. 2022

퇴임식 없는 퇴직?

 퇴임식 없는 퇴직?


“저도 이 자리에 서게 되네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선배님들의 퇴임식에 축하객으로만 참석하다가 오늘은 저의 퇴임식이 되었네요. 언젠가 저도 퇴직을 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 자리에 서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초임 발령을 받고 부모님이 준비해 주신 양복을 입고 속옷과 양말, 와이셔츠가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간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서울, 인천, 강릉, 청주, 군산, 남원 등지에서 근무하였고, 마지막을 여기 제주에서 마치게 되었습니다. 고향에서 퇴직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누구나 살아보고 싶고 근무해보고 싶은 아름다운 섬에서 좋은 선후배님들과 생활하다 퇴직을 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퇴직 신청을 하고 퇴임식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퇴임사는 무슨 말을 할까, 퇴임식은 어떤 형식으로 하면 좋을까, 가족 초대는 누구까지 할까 생각해 보았다. 예전 같으면 퇴임식이 성대하게 진행되고 식후에 모든 직원이 참석하는 거대한 회식도 하고 고향에서는 마을 잔치를 열 정도로 대단한 행사였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별 탈 없이 공직을 마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영광이고 가족이나 지역에서도 큰 의미를 가지는 걸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퇴직으로 모든 것이 정지되는 것이 아니고, 두 번째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퇴임식의 의미는 점차 희석되고 행사도 축소되어 갔다. 그래도 여전해 퇴직은 개인에게나 직장에서 축하할 일로 여겨져 퇴임식은 직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가족도 초대하여 개최되고 있었다. 


아버님도 공직에서 퇴직을 하셨다. 공식적인 행사를 마치고 동네에서도 행사를 했으니 당시에는 퇴직이 대단히 큰 행사였다. 나도 연차를 내고 처가에 가서 행사에 참여하며 아버님의 퇴직을 진심으로 축하해 드렸었다. 고향 형님의 퇴직도 스쳐 지나간다. 군청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직원들이 인근 식당을 통째로 빌려 행사를 열어주는 것을 보고 대단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퇴직을 하면 직원들이 이런 행사를 개최하여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퇴직은 아직 그런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총무과에서 퇴임식을 준비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진행했으면 좋겠냐고 물어왔다. 일단 고맙다고 하였으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퇴임이 나에게는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지만 다른 직원들에게는 무슨 의미로 여겨질까 의문이 들었다. 예전 선배님들의 퇴임식에 참석했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였나 돌아보게 되었다. 퇴임식도 여느 행사처럼 의례적인 일로 여기며 귀찮다는 생각과 왜 이런 걸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참여하지는 않았나 반문하게 되었다. 


지금 시점에서 나의 퇴직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퇴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퇴직이 끝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공직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좀 가벼운 상태가 되는 거라 생각했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퇴직은 정지가 아닌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과도 같이 여겨졌다. 오랫동안 알던 지내던 익숙한 사람과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기대와 설렘마저 있었다. 새로운 시작은 아무런 제약이 없는 나 자신의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조직문화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일 때문에 싫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고, 생계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중심이 되는 삶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삶의 시작에 퇴직이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퇴임식을 하지 않았다. 코로나의 상황도 그렇고, 예전처럼 퇴임식을 성대하게 하는 분위기도 아니므로 조용히 떠나겠다고 하였다. 제주를 떠나기 전에 과원들이 조촐한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현수막도 제작하고, 수제 케이크도 주문하고, 사랑이 담긴 글귀 가득한 기념패도 준비해 주었다.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해 눈시울을 적시는 직원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여태껏 보았던 그 어떤 퇴임식보다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마지막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아내와 아이들이 정성 가득한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아내는 직접 그린 나의 자화상을 준비해 주었다. 여러 날을 오롯이 나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을 아내의 사랑이 가슴에 다가왔다. 아이들이 준비한 아버지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패도 받았다. 감사패에 담을 글을 생각하며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을 아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친구들과 지인들도 퇴임을 축하해 주었다. 이렇듯 여러 번의 퇴직 행사를 하였음에도 아직 퇴임식은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퇴직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인 것 같다. 인생 2막에서의 직장은 자주 쉽게 바뀔 것이다. 그때는 그만두었다는 말을 하지 퇴직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앞으로도 몇 번은 더 퇴직이라는 과정을 거칠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나의 진짜 퇴직이 언제 올지 아직은 모르겠다. 예상외로 빨리 올 수도 있고, 늦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누구나 진짜 퇴직의 시간이 온다는 것이다. 훗날 모든 걸 내려놓고 사회에서 내려오는 날이 되면 사랑하는 가족, 함께 했던 친구들, 그동안 힘이 되어 주었던 지인들을 모시고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여 대접해야겠다. 마지막 퇴직을 위한 퇴임식은 내가 직접 마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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