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명함엔 무얼 담을 수 있을까?
퇴직을 한다는 것은 그간 사용한 메일 주소와 명함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장을 퇴사하면 소속이 없어져 회사 도메인 주소와 명함을 사용할 수 없다. 메일은 자주 사용하는 것이어서 몇 해 전부터 미리 준비를 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회사 메일은 잘 사용하지 않고 주로 개인 메일을 사용하는 습관을 들여 퇴직을 하여도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명함이다. 퇴직을 하고 갑자기 명함이 없어지니 사람을 소개받을 때 난감했다. 사회생활에서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누면 자연스레 명함을 교환하게 되는데 당장 사용할 명함이 없어졌으니 걱정이 앞섰다. 궁여지책으로 새로운 직업을 가질 때까지 사용할 임시 명함을 만들어봤다. 명함을 만들려면 하고 있는 일이나 직함과 같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뭔가를 적어야 하는데 고민이 되었다. 퇴직을 생각하며 나만의 고유한 가치를 고민해 보게 된 것이다. 난생처음 직접 명함을 디자인해 보았다.
나는 명함에 무엇을 적을 수 있을까? 하나하나 정리해 보았다. 근무 경력이 있으니 당연히 취득되는 법무사 자격증이 있다. 개업을 할 생각만 하면 언제든지 사무소를 열 수 있으니 법무사는 가장 든든하고 확실한 명함이다. 지금 생각에는 개업을 하고 싶지 않다. 평생 한 직장에서 근무했으니 이제는 다른 새로운 영역에서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할 수만 있다면 법무사 자격증은 보유만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고, 그간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먼저 퇴직한 선배님들 중에도 개업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분들이 많았다. 시간이 흐르고 결국 대부분 개업을 했다.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할 일 없이 지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가기에 선배님들의 개업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똑같은 전철을 밟을 확률이 무척 높다. 그러지 않기 위해 지금 무얼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으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다음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학원 야간 수업을 받고 여러 차례 학위 논문에 도전하여 어렵게 취득한 경찰학 박사 학위가 있다. 그렇다고 학위만으로 명함이 될 수는 없다. 학위와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게 되어 직함을 얻게 되면 명함이 될 수 있다. 자치경찰과 관련된 분야에서 일을 하거나 오랫동안 관심 분야인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거나 학교나 기관 등에서 경찰학 관련 교육을 해보고 싶다. 지금은 임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으나 학위를 취득한 것이 후에 새로운 명함을 가질 수 있는 잠재적 조건을 갖춘 것 같아 조금은 든든하다.
최근에 수필집을 출간했으니 작가라는 명칭도 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수익이 있거나 생계를 꾸려갈 정도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작가로 공인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글쓰기는 무척 좋아하는 일이다. 지금도 시간만 나면 카페 구석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앞으로도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제주에 있을 때는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지금 퇴직을 하고 나서는 퇴직 후의 좌충우돌 생활에 대해 쓰고 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여행 관련 글도 써보고 싶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 더 가꾸고 경력을 덧붙이면 명함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작년부터 “설레는 인생 플래너 송재영” 계정으로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수필집을 낭독한 영상을 올리기 위해 시작하였다. 제주에 근무하며 올레를 걸으면서 찍어 둔 사진을 낭독 영상에 담아 제작하여 올리고 있다. 아직은 구독자가 두 자릿수에 불과하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기는 하다. 그래도 시작은 했으니 가능성은 있다.
며칠을 고민하여 문구를 작성했다. 나의 소개에는 “송재영의 설레는 인생 이야기”라 쓰고, 경력은 “작가, 설레는 인생 플래너 유튜버, 경찰학 박사, 법무사”로 썼다. 소위 돈 되는 경력으론 많이 부족하지만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는 생각에 기특하기도 했다. 지금의 경력이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갈 기반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명함에 새겨 넣을 수 있는 경력을 쌓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 관공서나 공공기관에서 공고하는 내용을 살펴보며 지원을 할 수 있는 것이면 일단 도전해 보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컴퓨터 사용은 후배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하려고 애썼다. 덕분에 홀로서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으나 막상 지원서나 서류를 준비하면서 많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느끼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아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몇 시간씩 끙끙대다 메일을 보내고 나면 나름 보람도 있다.
나는 어떤 명함을 가지고 싶은 걸까? 두 번째의 삶이니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로 살고 싶다. 직장을 잡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주위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내가 잘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두 번째 명함에는 진짜 나를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