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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Jul 25. 2022

뭐하지?

어디라도 가야 하는데 갈 곳이 없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갈 곳이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갈 곳이 없어져 버렸다. 며칠은 좋았다. 그것도 딱 3일뿐이었다. 갈 곳이 없다는 것은 고통이다. 


“달그락달그락” 아직 방안은 깜깜한데 주방 쪽에서 소리가 났다. 아내는 벌써 일어나 아이들 아침 준비를 해 주고 있나 보다. 나이 탓에 아침잠이 없어져서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찍 잠에서 깬다. 잠시 고민을 하였으나 딱히 할 일이 없어 그대로 누워있다. 곧이어 아이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나고 식탁에선 아내와 아이들의 경쾌한 소리가 들린다. 이쯤 되면 나갈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어정쩡한 상태로 누워 있는데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갈 준비를 하며 방문을 열어 보고 “아직 주무시네”라는 혼잣말을 남기며 집을 나선다. 


자리를 털고 거실에 나오니 아내가 식사를 정성스레 차려 준다. 쪼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아침밥을 먹는다. 아내는 밥상을 정리하고 식사 후에 쌓인 그릇들을 설거지한다. 빨래통의 옷가지들은 세탁기에 돌리고 청소기를 돌려 안방과 거실을 오고 간다. 대충 집안일을 끝내고 세탁기에서 옷가지를 꺼내 밖으로 나가 빨래걸이에 널고 데크에 있는 쓰레기를 분리하여 정리하기 시작한다. 음식물 쓰레기 통도 문 밖에 내놓고, 화분을 덮어 놓은 비닐도 제켜주고 물을 주며 간밤에 얼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밖의 일을 대충 처리하고 안으로 들어온 아내는 모닝 차를 준비해 거실에 있는 나에게 같이 하자고 한다. 그때까지도 딱히 할 일이 없이 빈둥대던 나는 멋쩍은 모습으로 고맙다고 한다. 차를 마시면서도 오늘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하나 요리조리 궁리를 한다. 차담이 끝나고 아내는 성경책을 꺼내 말씀의 벗을 읽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뱃속 시계가 점심시간을 알리면 아내가 차려 준 점심식사를 한다. 오후에는 일이 없어도 집을 나서야지 하는 다짐을 하며 천천히 식사를 한다. 


물론 매일 상황이 이러는 것은 아니다. 퇴직을 하고도 바로 할 일이 생겼으니 출근을 하는 날도 많다. 그래도 매일 나가는 것이 아니라 쉬는 날이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난감하다. 아내는 그동안 고생했으니 편히 집에서 쉬라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을 어디까지 진심으로 믿어야 할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전부터 퇴직을 한 선배들로부터 수차 들었던 말이 있다. 집 안은 여자들의 영역이니까 퇴직을 하여 할 일이 없어도 절대 침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해가 뜨면 무조건 집을 나서야 한다는 의미였다. 퇴직을 하고 시간이 불규칙해지면서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이 무엇인지가 가장 큰 고민이 되었다. 하는 일 자체도 불규칙적이고 일이 없는 날도 있다 보니 딱히 한 일이 없이 하루가 지나가 버리고, 하루 종일 세끼 주는 밥만 먹으며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시간이 너무 아깝고 무기력해지기까지 했다.


성격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터라 집에 있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마땅히 갈 곳도 없는데 무조건 밖에 나가 서성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만의 사무실을 준비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으나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공간을 임대하여 사용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관리면에서도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곰곰이 생각하다 퇴직 전부터 카페에서 글을 쓰던 생각이 났다. 집 인근에 편안한 카페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인근에 새로 오픈을 하여 1,2층 같이 운영하는 곳을 찾았다. 2층은 매장과 분리되어 손님들이나 직원들의 신경이 덜 쓰이고 오픈 시간도 빨라 갈 곳 없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쉬는 날이 오면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아이들과 같이 집을 나선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주문하여 2층에 있는 나의 보금자리에 앉으면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다. 가장 먼저 플래너를 펴고 전날 하지 못한 일을 점검하고, 당일 해야 할 일을 체크한다. 만날 사람들을 챙겨보고 점심 약속이나 미팅을 잡는다. 일과 정리가 끝나면 앞으로의 인생 여정에 도움이 될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한다. 공부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책에 대한 글도 쓰고, 퇴직 후의 일상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약속 장소에 가서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신다.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앞으로의 준비에 대한 의견도 나눈다. 퇴직을 하고 가장 즐거운 시간이 점심시간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식사시간이 딱 한 시간이어서 항상 아쉬움이 많았다. 만나자마자 인사만 대충 하고 허겁지겁 쫓기듯이 대충 끼니만을 나누고 헤어져서 사무실에 돌아올 때는 언제나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았다. 지금은 시간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끝나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대화를 나누며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자리를 옮겨 커피 한잔을 나누며 오후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더 한 바람은 없을 정도이다. 오후에는 회사 일을 하거나 일이 없어도 해가 지기 전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두어 달이 지나면서 나름 시간을 정해서 출근과 퇴근을 규칙적으로 하려고 하니 불안정하고 들떠 있던 생활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요즘은 직장 생활을 하며 하지 못했거나 미뤄두었던 행정업무나 민원을 처리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시청에도 가고 주민센터도 찾아가고 한전이나 지적공사에도 다닌다. 퇴직 한지 얼마 안 되었으나 공무원들의 태도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는 걸 보면 벌써 민원인의 입장이 된 것 같다. 조만간 집 보수도 해야 한다. 주택을 지은 지도 7년이 지나다 보니 여기저기 손볼 곳이 많아져서 수리도 해야 하고 울타리도 새로 페인트 칠도 해야 한다. 직장에 다닐 때는 시간 내기가 어렵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뤄 놨던 일들을 하나씩 처리할 계획이다. 


서툴지만 하나하나 적응 중이다. 뭐할지 하는 고민은 많이 없어졌다. 직장 다닐 때보다 할 일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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