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2년 차에 접어들면서 뭔가 부족하고 허전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데 전혀 신이 나지 않는다. 새해 들어 생기도 없고 기운 없이 지내는 모습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왜 그래요? 요즘 말수도 줄고 의기소침한데 뭔 일이 있어요?” “나도 잘 모르겠어. 뭔가 아쉽고 부족한데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어.” 아내가 차 한잔을 준비해서 식탁에 마주 앉았다. 퇴직하고 바로 새로운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지치기도 하고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소진해서 탈진 상태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올해는 여유를 갖고 쉬면서 충전을 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처방을 해 주었다.
31년 직장 생활을 마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행운이기도 했지만 적응하는데 쉽지 않았다. 규칙적이고 조직화된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이라도 풀려는 듯 닥치는 대로 도전하고 참여하며 1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과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가지고 있던 것을 output만 했지 input이 없다 보니 모든 게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지치고 힘들 때 보링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나도 보링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나이 60이 되어가면서 건강만큼 리스크가 큰 것도 없는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할 때만 해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운동 시간도 정해서 꾸준히 하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산에도 다니고 천변도 거닐면서 관리를 했다. 퇴직을 하고 하는 일이 새롭기도 하고 불규칙해서 시간관리도 어렵고 업무에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거의 운동을 하지 못하고 일 년이 흘러갔다. 몸에서 여기저기 신호를 보내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하지 못하고 그냥 시간만 보냈다. 1년 동안 뒷산도 가지 못했으니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골이지만 동네에 있는 아파트에 헬스장이 있어 동네 주민은 이용이 가능하다. 새해 첫날 일 년 회비를 등록하고 한 달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 저녁에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아침에 운동을 하고 집을 나선다. 체중계에도 매일 올라간다. 한 달 내내 1-2백 그램 내에서 거의 변화가 없이 관리하고 있다.
아내가 딱 집어 조언해 준 게 있다.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새로운 지식이 쏟아지는데 그동안 알고 있는 지식만 사용했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데 소홀한 것 같다고 했다. 아차 했다. 너무 정곡을 찌르는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맙다고 했다. 여유 시간을 보내던 장소를 카페에서 도서관으로 변경했다. 별도의 사무실이 없다 보니 여유 시간을 보낼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카페를 정하여 매일 시간을 보냈다. 카페의 장점도 많으나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는 도서관도 병행해서 이용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엄마의 손을 잡고 온 유치원생부터 퇴직 후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가 같은 공간에 함께 어울려 있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 최근 모든 도서관이 리모델링되어 옛날 도서관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사면이 다양한 책으로 잘 진열되어 있고, 책상과 의자가 안락하고 편안하게 배열되어 있으며, 곳곳에 조명과 콘센트가 설치되어 스마트한 카페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부족한 지식을 채우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독서모임 리더스클럽에서 매주 선정한 한 권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게으른 탓에 주말 모임에는 잘 참여하지 못해도 선정도서는 꼬박꼬박 읽고 있다. 도서 대여 시스템을 통해 책이 비치된 도서관을 찾아 이곳저곳 도서관을 탐방하는 재미도 솔솔 하다. 올 한 해는 독서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다. 전문 서적의 공부도 해보고 싶다. 무얼 하든 기초 지식이 충분하지 않으면 금방 바닥이 드러나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평생을 근무하며 학습했던 분야가 아닌 새로운 길을 선택하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글쓰기도 재 충전이 필요하다. 시간이 많음에도 1년 동안 글을 거의 쓰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동호회 활동도 하지 않고 혼자 쓰다 보니 동력이 떨어진 것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뭔가 지속적으로 하려면 같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문예반에 다시 등록하여 문우들과 문학여행도 떠나고, 작품도 공유하며 새로운 동기부여를 받아야겠다. 글을 쓰고 싶은 분들을 만나 나의 경험을 나눠주고 그분들의 이야기도 들어야겠다. 고갈된 글심을 글감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하고 있는 일이 매일 출근을 해야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점심 식사 해결이 난감할 때가 많다. 제주에 있을 때부터 훈련이 되어 퇴직 후에 혼밥을 먹는 게 크게 부담은 없으나 아쉬움은 많았다. 혼밥이 더 익숙해지기 전에 점심만큼은 혼자 먹지 않기로 했다. 회사에 다닐 때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나고 알게 되었다. 그때는 젊고 바쁘다 보니 능동적인 식사보다는 소극적인 식사를 같이 했었다. 먼저 연락해 주고 먼저 찾아주면 시간을 같이 하곤 했다. 이제는 시간 여유가 있는 내가 적극적인 식사 자리를 만들어야겠다. 먼저 전화를 하다 보면 그 사람도 내 맘처럼 보고 싶고 만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회사 다닐 때와는 다른 진솔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퇴직 후에 만남은 서로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허전한 마음을 가슴 따뜻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야겠다.
텅 빈 가슴으로는 다른 사람을 안을 수 없다. 내가 가득해야 나눠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배려할 수 있다. 이제는 쏟아낼 때가 아닌 채워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