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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Jan 23. 2023

인생을 나눠 줄 수 있나요


인생을 나눠 줄 수 있나요


한 학생이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멘토링을 시작하고 5분 정도만 눈을 뜬 상태로 있다가 그 후 100분 멘토링 시간 내내 잠을 잤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난감하고 답답했다. 아이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멘토링인데 호응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안타깝고 야속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대충 정리를 하고 교실을 나서는 내가 밉기도 하고 무능한 나에게 화도 났다. 이런 상황조차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멘토링하겠다고 나섰는지 후회마저 되었다. 


퇴직을 하고 처음 도전한 인생나눔교실은 인문적 소양을 갖춘 선배 세대가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세대를 찾아가 멘토링을 진행하는 사업으로 벌써 6년째 진행 중이다. 내가 과연 인문적 소양을 갖추었는지 원초적인 의문에 직면했다. 튜터를 찾아 조언을 구했다. 튜터는 질문 반 푸념 반의 넋두리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듣고 있었다. “멘토님은 멘티 학생이 왜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튜터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생각해 보니 멘티 학생이 멘토링에 집중하지 않고 잠을 자는 것에 화를 내면서도 멘티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멘티의 입장에서 고민을 해보지 않은 것이다.


내가 멘티라면 이 멘토링을 좋아할까라고 반문해 보았다. 내가 옮다고 생각한 방식을 모두 좋아하리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에 왜 오게 되었는지, 지금 무엇이 가장 힘들고 어떤 고민이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고 싶어 하는지. 책을 덮고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조금씩 마음을 열어 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겐 무얼 가르쳐 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안학교에서 고등학교 1-3학년 6명과 멘토링을 진행했다. 그곳은 각기 다른 학교에서 위탁된 중고등학생 20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다. 학생들은 소속 학교도 다르고,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1년 정도 생활을 하다 복귀를 한다. 그러다 보니 각자 개성도 강하고 규칙도 자율적인 면이 많아 일반적인 학교생활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처음에는 잘 적응이 되지 않았으나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다고 자부해 오던 터라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멘토링의 주제는 수필집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아 찾기로 정하였는데 책을 읽는 것부터 아이들의 반발이 있었다. 학습을 위주로 하는 정규과정에 거부감이 있어서 이곳에 온 아이들에게 책을 읽자고 한 것부터 무리였다. 공부를 시키기 위해 책을 읽자고 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책이라는 단어부터 거부감이 있어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다. 책을 덮고 꿈을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꿈이 없다고 했다. 용어 선택을 바꾸었다. 앞으로 무얼 하고 싶은 지 물어봤다. 고깃집 사장, 댄스가수, 자동차 정비, 미용이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고 아예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어렵게 소통의 첫 발을 내디뎠다. 


일단 어려운 글보다는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첫사랑에 대한 글을 선택해서 읽어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읽는 내내 집중했다. 각자의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의 첫사랑은 내가 알고 있고 정의했던 첫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이들의 세대와 내가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정서적 접점이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횟수를 더하면서 약간의 호응을 보이기 시작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참여 태도도 진전이 되지 않고 출결도 들쑥날쑥하다 결국 두 명이 참여를 하지 않겠다고 이탈을 했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은 변하기가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많은 청소년을 만났다.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 앞까지 왔다는 것은 그 아이에게 어렵고 힘든 많은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판에 넘기기 전에 아이들의 교화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한다. 잠깐 만난 사이로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도 있지만 그 순간만은 아이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최선을 다했다. 업무적으로 만난 사이라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지만,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한 번 더, 한 번 더 하는 심정으로 기회를 주려고 애썼다.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아이도 있었으나 사건이 내 손을 떠나면 더 이상 관여할 수가 없다. 그때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의 손을 놓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힘겨운 과정을 이어갔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으며 묵묵히 멘토링을 진행했다. 이탈을 했던 아이 중 한 명은 다시 합류를 했다.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맛이라도 보여주겠다는 심정으로 낭독을 시도했다. 처음엔 꺼려하던 아이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듣는 경험은 처음이라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낭독은 글을 쓰는 시작과도 같다. 글을 써보자고 하니 아예 거부를 했다. 어른들도 힘들어하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사진에 글을 입혀 인화해 주기로 했다. 글그램 앱을 통해 자신이 찍은 사진에 3줄 정도의 글을 쓰게 하고 이를 즉석에서 사진으로 인화해 주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멘토링에 참여하지 않은 아이들까지 쫓아와서 사진을 인화해 달라고 했다. 한 주 한 주 시간이 흐르며 불가능할 것 같았던 아이들의 글쓰기는 하루가 다르게 나아졌다. 글이 담긴 사진들이 강의실 한쪽 벽면을 채워가는 것을 보며 아이들도 내심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마지막 날에는 아이들이 야외행사에서 찍은 사진에 자신의 꿈을 적은 글을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 선물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인생 경험을 나눠주겠다고 시작한 인생나눔교실을 통해 오히려 아이들로부터 더 많은 인생을 배웠다. 인생 멘토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멘토링을 끝내고 나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선의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니었나 뒤돌아보기도 했다. 다시 인생나눔교실에서 멘토를 모집하고 있다. 아이들과의 멘토링은 막연하게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나 경험삼아 해 본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되새겨보니 주저된다. 한편에선 한 번 더 하면 좀 더 잘할 수 있는데 하는 아쉬움과 초보여서 미처 나누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련으로 재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나와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인생 나눔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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