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 출판] 작가 김초엽, 천선란, 김혜윤, 청예, 조서월
독서와 글쓰기는 관성을 갖기 때문에
꾸준히 하지 않으면 멈추고 만다.
그냥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1월 2일 새벽, 충동적으로 본 영화 3편에 대한 후기를 쓰고 브런치 투고를 하면서 작가 신청까지 올렸다. 반나절도 안 돼서 승인이 되자 신나서 사흘동안 두 편 더 썼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두 편 더 썼다. 3주가 넘도록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것은 관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지금 앉은 자리에서 두 편 써버리는 게 목표다. 읏쇼읏쇼!
SF 좋아하세요?
아뇨.
좋아하는 영화는?
<더 코어>, <가타카>, <인터스텔라>
올해의 기대작은?
<프로젝트 헤일메리>
...
...
SF 좋아하세요?
...네.
자고로 SF란 스타워즈, 스타트랙, 터미네이터 등 고전 명작 시리즈를 의미하는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외계인이 안 나와도 SF로 쳐준다니. 와! 내가 소화하는 장르의 폭이 넓어졌다. 봉준호 <괴물>도 SF에 포함된다는 걸 알고 무릎을 탁 쳤다. 책 한 권 읽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내가 유일하게 빠르게 읽는 장르가 바로 '한국 SF 단편 소설'이라는 것을 작년 쯤에야 깨달았다. 허블 출판사의 존재에 감사한다. 2023년 서울 도서전에서 처음 만난 허블이 내 독서 입맛을 완전히 개조시킨 셈이다. 한 번의 만남이 입맛을 개조한다니 이 얼마나 SF적 요소인가...
앤솔로지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
사실 이 책은 내돈내산은 아니고 공주님들과 독서모임을 통해 만났다. 표지와 소재부터 너무 내 취향이었기에 일부러 한 턴 미루고 받았다. 분명 이 책만 그리워 할 게 뻔하니까. (그리고 현재는 장작이 된 책을 하차하고 받은 건 천선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였다. 한국SF가 나를 부른다...) 작가 5명의 단편으로 구성된 앤솔로지다. 한국SF소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김초엽, 천선란, 허블에서 주관하는 한국과학문학상 5회, 6회 수상자인 김혜윤, 청예, 조서월이 참여했다. 다섯 편이지만 제일 흥미있게 읽었던 세 편만 기록을 남겨보고 싶다.
김초엽 <비구름을 따라서>
보민은 죽은 이연의 추도식 초대장을 받는다. 추도식에는 보민 뿐만 아니라 이연의 동료였던 승희와 이연과 보민을 이어준 '노바 파우치' 개발자인 정 실장도 초대장을 받고 참석했다. 이연은 알기 어려운 사람이다. 알쏭달쏭한 말을 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뚜렷한 사람이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한 번 사랑하게 되면 푹 빠질 법한 러블리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가볼 수도 없는 너머의 세계에 매료되고, 그 세계들에 기대어 일생을 살아갈까. 보민은 물건들 사이를 걸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갈 수 없어서. 별들처럼 닿을 수 없지만 빛을 내고 있어서. 이야기로 진공을 채워 넣을 수 있어서. 그러나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어서.
또 다른 태양계에 존재하는 평행세계
그곳에서의 너와 나.
다른 세계에서 사소하던 것이
내 세계에서는 더 이상 사소하지 않게 되었다.
무수한 추측 속에서 무엇이 맞는 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건의 발달인 이연은 죽었으니까. 어쩌면 초대장부터 이연을 사칭한 누군가의 질 나쁜 장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이연이 살아있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한 줄씩 얹은 이야기가 실체를 갖고 믿고싶은 진실이 된 것 뿐이다. 새삼스럽게 느껴진 비구름과 햇볕이 보민의 삶에 유의미해진 것처럼 이 결론 없는 공상이 썩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천선란 <우리를 아십니까>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고 사람들은 이주선을 타고 떠났고 '나'와 '아내'는 여기 지구에 있다. 동성애자가 소설에 등장하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일종의 트렌드가 되었고 여전히 독자들의 편견을 두드린다. 어떤 소설은 말미에 반전으로 사실 동성이었다는 진상을 걸어두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동성애자로서 받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소설은 의외로 많지 않다. 대체로 소재로서의 동성애자는 특별할 것 없이 일상적인 요소로 녹여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이 소설에서는 차별을 확실하게 꼬집는다. 차별하는 사람들이 아프라는 듯이.
'아무도 차별하지 않는데 차별받는 느낌에 화가 나는 것만큼 추한 건 없을 거야.'
'이혼 서류라고 생각해. 우리한테 이혼이라는 단어도 붙고, 나름 기쁘지 않아? 아!'
동성 결혼조차 허락되지 않은 사회에서 만연한 차별은 결국 소수자를 위축시킨다. 아무도 차별하지 않았다. 어쩌면 저 사람도 소수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예민해진 사람은 일상적인 사건에도 차별을 의심하게 된다. 예민한 사람이 잘못된 건 아니고, 악의 없이 차별을 남발하는 '순진한' 사람들이 배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좀비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끊임없이 기울어진 땅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살았으니 이제 그만 버텨도 되지 않겠느냐고. 지켜보는 인간이 없으니 그건 추락이 아닐 거다. 우리를 보고 물에 뛰어들었다고 외칠 사람이 없으니 우리는 그걸 다이빙이라 불러도 좋을 거야.
사람들이 이주선을 타기 위해 떠났다. 멸망해 가는 지구에서 도망쳤다. 도망가고 싶다고, 인간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빌었던 건 우리인데 정작 우리가 남고 모두 도망쳤다. 지구가 오롯이 우리 차지가 됐다. 우리가 설 곳이 가장 부족했던 곳인데, 이제는 어딜 가든 지천이 전부 우리의 땅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성소수자는 여전히 '비정상'으로 분류된다. 우리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드러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오픈리들이 길을 닦아주고 있다고 한들 커밍아웃조차 허락되지 않는 소사이어티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더 이상 지켜보고, 판단하고, 손가락질 할 인간들이 없다. 온전히 우리의 행성이 된 것이다.
그러니 돌아오지 마십시오, 그대들.
당신들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이제 이 행성에는 우리뿐입니다.
여담이지만 작가노트를 보면 '저랑... 좀비 하실래요?'라고 써있다. 그리고 천선란 작가는 허블에서 단편집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를 출간했다. 정말 좀비 좋아하시나보다... (저도요)
김혜윤 <오름의 말들>
전 세계 곳곳에 거대한 우주 달팽이가 떨어진다. '오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들을 연구하고 그들의 언어를 통역하는 연구소가 생긴다. 인간은 미지의 것에 두려움을 갖는다. '우주적 난민'인 오름에 대한 처우와 통역사인 희정과 류가 오름에 연대하는 이야기다. 나는 여전히 2024년 12월 3일을 기억한다. 지난 겨울 광장으로 나온 수많은 시민들과 수많은 연대를 기억한다. 주목받지 못하던 고공농성에 연대하고 모두가 투쟁을 외치던 그 시기가 뼈에 새겨진 것처럼 뚜렷하다. 이 또한 연대에 대한 이야기다.
류는 희정을 바라보았다.
그가 옳다고 말하고 싶었다.
오름들의 존엄을 지켜내고 싶었다.
그리고 류는...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희정과 함께 싸우고 싶었다.
류는 기억 속에서 어떤 비난을 떠올렸다. 누군가는 그들의 고집을 '비합리적인 애착'이라고 했다. 그것은 연민일 수도 있었다. 미련한 반발심일 수도, 알량한 책임감일 수도 있었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낼 수 없는 우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음을 설명할 낱말이 없다고 해도,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류는 희정의 긴 문장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희정이 하나의 머리에 달린 마지막 돌기를 잡고 그 위로 올라갈 때까지. 그리고 류는 희정이 던진 크레인의 로프를 받고 그것을 모두 잘라버릴 것이다. 희정이 스스로 내려올 때까지 아무도 희정을 끌어내릴 수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만약 흥미가 생겨서 이 책을 사게 된다면 꼭 김혜윤 작가의 말을 읽어주면 좋겠다. 이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치열한 싸움을 향한 찬사이자 옹호이다.
소설이라는 게 늘 그렇듯, 사람 사는 게 모두 그렇듯 이 책도 역시나 사랑 이야기다. 룸메이트로서, 연인으로서, 동지로서, 창조주와 피조물로서, 정비공과 로봇으로서. 사랑을 운운하는 걸 오글거린다고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나는 굳이 사랑을 짚어내고 싶다. 꼭 연인으로서 죽고 못 사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사랑에 기반된 것이라는 걸 사람들도 알아주면 좋겠다. 사랑은 별로 거창한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