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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Apr 25. 2020

DAY+3 / STARS

 처음으로 저녁을 먹으러 외출했다. 이제 이 동네가 조금은 익숙해져서 밤에 돌아다니는 것도 부담스럽지 않다. 도착한 첫날 초면인 동네를 밤에 돌아다니기 무서워 참았던 걸 생각해보면 3일 만에 장족의 발전을 했다. 여기 와서 내내 배부른 빵과 짜디짠 베이컨 같은 것만 먹었더니 닭볶음 탕이랑 김치찌개랑 주꾸미 볶음 같은 칼칼한 것들이 먹고 싶었다. 왜 서양의 사람들은 베이컨과 소시지가 건강하지 않다는 건지 염도를 경험하고 새삼 깨달았다. 이렇게 짜게 만드니까 건강할 수가 없지! 냉장 시스템도 엄청 발전했으니까 덜 짜게 만들어도 될 텐데. 한국을 좀 본받아줘. 나 소시지 좋아한단 말이야.


타이 타이 팟타이

 아무리 검색해봐도 한식당은 시내로 나가야만 있어서(근데 엄청 많다. 강호동의 백정도 있더라. 메모장에 끄적끄적. CBD에 가면 삼겹살을 먹자!) 차선으로 중국음식을 먹을까 찾아보다가 낮에 본 팟타이 가게가 생각나 급 노선변경을 했다. 새우를 잔뜩 넣은 짭짤, 새콤, 달콤 팟타이꿍. 너를 먹어줄 테다. 타이나 박스라는 웃는 모양의 간판을 내건 가게를 찾아갔다. 서브웨이처럼 메뉴를 결정하고 들어가는 재료를 선택하고 디테일하게는 소스나 누들까지 결정할 수 있는 오더 방식이었다.

 팟타이 한 접시에 오스트레일리아 달러로 18달러. 약 15천 원 정도 될 것 같다. 다른 간단한 식사들도 대체로 이 가격대인 걸 생각하면 합리적이다. 한국에서는 태국의 거리 음식이기도 한 이 요리를 왜 그리 비싸게 파는지 모르겠다. 요즘엔 저렴한 아시안 식당이 많이 생겨서 접근성이 좋아졌긴 하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생어거스틴에서 왕새우 팟타이 한 접시 먹으려면 거의 4만 원은 지불했다. 거의 2인분쯤 되는 양이긴 하지만 그래도 과하다. 근데 맛있는 게 함정.

 메뉴를 주문하며 진저비어를 하나 같이 계산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캔처럼 지지대를 들어 올려서 뚜껑을 벗겨내는 방식이었고, 탄산이 강하진 않은 단 음료였다. 음료를 마시며 가게를 둘러봤다. 몇몇 테이블이 채워져 있었고 포장을 해가는 사람도 꽤 들락거렸다. 여기도 미국처럼 아시안 푸드는 패스트푸드 같은 박스에 넣어 포장해서 먹는 게 일반적인 것 같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커다란 보온 백 팩을 멘 청년이 눈에 띄었다. 뭔가를 카운터에서 얘기하고 앉아서 기다리는데 그냥 저녁을 테이크-아웃하러 온 사람처럼은 안보였다. 음식이 나오자 보온 가방에 잘 넣어 등에 메고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조금 뒤 같은 가방을 멘 사람이 또 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배달 라이더였다! 배고플 때마다 옷을 챙겨 입고 나오면서 속으로 조금 툴툴댔는데, 이런 좋은 시스템이 있다니. 공부해서 애용해야지. (겁 많아서 한국에서도 혼자서는 못 시켜 먹는 주제에.)

 팟타이는 꽤 만족스러웠는데, 역시나 내 입에는 짰다. 소스를 절반만 넣어 달라고 할 걸. 입으로 새우 꼬리를 야무지게 발라내 먹으면서 ‘나에게는 너무 짜요. 소스를 덜 넣어서 덜 짜게 만들어주세요.’를 머릿속에서 영어로 만들어 말해봤다. 다음에 와서 먹을 때 요청해야지.


해야지

 호스트가 어제부터 보이지 않아서 음식을 주문하거나 물건을 살 때 밖에 말할 일이 없다.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건 꽤 외로운 일이다. 밥을 먹고 부른 배로 들어가 눕고 싶지 않아서 바다로 향했다. 벤치에 앉아서 바다를 보다가, 눈 앞의 펜스가 시야를 방해해 백사장 가까운 계단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모래도 한 번 밟지 않았네. 내일은 슬리퍼를 신고 나와서 맨발로 모래도 밟고, 바닷물에도 들어갔다가 나와야지. 그러고 보니 오늘 잔디에 누워 책 읽으려고 했는데 못했네. (종일 가랑비가 흩뿌렸다.) 자꾸 미루면 못 하는데- 생각나면 귀찮아하지 않고 얽매이지 말고 바로바로 되는대로 해야겠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바다 가까이 닿아 있는 코발트의 하늘은 구름이 가득했다. 바람 따라 구름이 움직일 때마다 별이 반짝였다. 살면서 제일 가깝게 본 반짝이는 별이었다. 별들이 심장박동을 표시하는 그래프처럼 위아래로 잔뜩 박혀서 저마다 반짝였다. 구름이 지나가서 가리면 가리는 대로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 별자리를 알아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뻔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좋은 풍경을 눈에 담을 때, 옆에 함께 할 사람이 없음에 괜히 쓸쓸하다. 별과 해 질 녘의 노을과 다채로운 하늘빛은 사진으로 담으면 퇴색해버려서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물론 그와 나의 처한 상황도 다르니 사진에 담겨도 같은 정서일 수는 없겠지.

 별이 너무나도 반짝여 윤동주 시인이 생각났다.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모든 아름다운 것들 것 꺼내 보던 외로운 영혼이. /22FEB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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