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해 Apr 26. 2020

DAY+4 / HAPPY BIRTHDAY!

알콜성 인간

 역시 딥-슬립에는 알코올만 한 게 없다고 말하면 너무 알코올-홀릭 같으려나. 어제 괜히 외로운 마음에 와인을 한 병 사다가 두 잔 마시고 잤는데, 잠에 빠진 순간도 자던 순간도 기억나지 않고 깔끔하게 눈을 떴다. 알코올 만세. 매일 선잠을 자거나 깊이 못 자고 뒤척이는데 술 한두 잔에 이렇게 깔끔하게 자니 자꾸 의존하게 된다. 그래도 혼자 하는 음주는 좋지 않으니 조금만 먹는 걸로.


오롯한 이방인

 혼자서 뭐든 한다는 게 생각보다 많이 움츠러드는 일인 것 같다. 어차피 같은 일인데 누군가 옆에 있어 주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다. 한국에서는 능히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던 일들이 여기서는 모두 새삼스럽고 낯설어서인지 긴장의 연속이다. 나는 내가 새로움에 대해 겁먹거나 많이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느낀 나는 엄청 쫄보였다. 그동안 스스로를 오해하고 보듬지 않아서 얼마나 고생시켰는지 생각하면서 반성했다. 이번 주는 우쭈쭈의 주간이니까!


비가 오는 날의 해변

 오늘도 비가 조금 흩뿌렸다.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일요일을 만끽하려 해변에 몰려들었다. 서핑보드를 하나씩 매단 사람들이 바다로 돌진하고, 먼바다에는 까맣고 하얀 사람들이 동동 떠있었다. 파도가 높이 몰려오고 몇몇은 능숙하게 파도 위를 달렸다. 보고만 있어도 즐거운 풍경이었다. 가까이에 있는 해변의 바위에서 크게 몰아치는 파도가 올 때마다 바다에 뛰어드는 어린애들도 있었다. 내가 물을 좋아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생겼지만 어디서든 안 하던 짓을 하면 탈이 나고 더욱이 혼자 있는데 까불지 말자라는 생각에 해변가에 앉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저녁의 해변



 집에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저녁 즈음 노을 시간에 맞춰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도 보랏빛의 오묘한 하늘과 별을 볼 생각이었다. 더불어 첫 백사장 체험까지. 어둑해지는 시간에도 해변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맨발로 걸었다. 파도 가까이 다가가 발을 감싸고 사라지는 바닷물도 맞았다. 갈매기도 나처럼 종종 물을 따라 걷다가 파도에 발을 씻었다. 백사장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수채 물감을 대충 붓으로 섞어서 쓱쓱 그려 놓은 모양이었다. 이따금 구름 사이로 비친 별의 빛과 비행기의 불빛이 지나갔다. 크게 몰려오는 파도 소리와 가끔씩 섞여 드는 즐거운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해변을 가득 채웠다. 이 모든 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저녁이었다.


HAPPY BIRTHDAY

 아. 오늘은 생일이었다. 나이 드는 것에 무감해져서 (스물 후반부터는 나이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고 나도 따라 늙어지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보면 버퍼링이 걸려서 망설이다가 출생 연도를 말했다.) 그저 생일이 지나기 전에 출국해야 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막상 혼자 생일을 보내려니 어색했다. 그동안 나도 모르는 새에 어리광을 부리며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 하루를 오롯이 보내며 나에 대해 생각했다. 저녁이 내려앉은 해변에서 사랑받은 기억으로 마음을 그루밍했다.

 생일 축하해. /23FEB20

    

작가의 이전글 DAY+3 / STAR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