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위한 일을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으로 향하고, 일을 하고, 급여를 받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일을 한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사무직에게 ‘일’은 종종 문서 작업으로 대표된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문서가 꼭 필요할까?
연구직에게 ‘일’은 논문 실적으로 환원되곤 한다.
나는 지금, 실적이 필요해서 논문을 쓰는 걸까? 아니면 의미가 있어서 쓰는 걸까?
가끔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의 대가로 급여를 받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나는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일을 무척 좋아한다.
그럼에도 묻게 된다.
내 논문은 과연 생산적인가?
솔직히 말하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처음부터 사회적 함의를 명확히 도출하는 연구를 하는 건 사실 상 불가능하다.
시행착오와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불편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쁜 걸까?
하루를 마치고 “오늘 뭘 했지?” 돌아보면,
정신은 없었지만 정작 별로 한 게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어쩌면 우리는 근면 성실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삶을, 바람직한 삶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일이 잠시 뜸해져 느긋한 시간이 생기면, 이상하게 불안해진다. 이래도 되나?
아이러니하게도 창의적인 발상과 새로운 문제의식은,
분명 여유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여유는 ‘게으름’처럼 취급되고, 바쁨은 ‘성실함’의 증거가 된다.
최근 들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의문이 있다.
우리는 정말 가짜 노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일을 해야 하니까 일을 만드는 듯하다.
20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쓰고,
특정 주제로 한 시간짜리 강연을 하고,
회의를 위한 회의를 하고,
기록을 위한 기록을 남기는 것들.
그 많은 결과물들이 진짜 필요해서가 아니라,
‘증빙’이 필요해서 만들어지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AI 시대가 오면 지식 전달과 아카이빙은 더 이상 인간이 전담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노동을 신성시하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외친다.
이 현실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AI로 인해 인간은 가짜 노동에서 자유로워질까?
아니면 오히려 더 가짜 노동에 집착하게 될까?
생산성의 기준이 재정의되는 대신,
기존의 기준을 더 빡빡하게 들이대며 서로를 몰아붙이게 될까.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이런 고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