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살아 있음, 그리고 일상의 감사함

2018년 여름, 예고 없이 찾아온 병

by 춤추는호랑이

올해 5월, 국제 학술지에 제출한 논문이 게재 승인되었다. 논문 승인 레터와 함께 출판 예정일이 내년 4월이라는 안내도 받았다.


그 순간 문득 ‘내년 5월?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지 않다면?’ 하는 생각이 스쳤다. 처음 든 생각이 이거라니 참 엉뚱하다. 다행히 이 감정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2018년 6월, 특별한 이유 없이 가슴에 멍울과 통증이 생겼다. 당시 지금의 아내는 여자친구였다. 주말이라 그녀의 권유로 함께 세브란스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 당직 인턴은 혈액 검사와 영상 촬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우리는 점심으로 뭘 먹을지 이야기했다.


약 한 시간 뒤, 인턴 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를 설명하러 왔다. 첫마디가 기억난다. “흠… 겁내지 말고 들으세요. 입원하셔야 해서 집에 가실 수 없어요.” 나는 어리둥절했고 머리가 하얘졌다. 선생님은 덧붙였다. “혈액암이 의심됩니다. 다행히 혈액 수치로 보아 만성 골수성 백혈병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제야 나는 백혈병이 혈액암이라는 것을 알았다.


병실이 배정된 뒤 몇 가지 추가 검사를 받았고, 다른 과들과도 협진을 했다. 정신이 없었고, 다른 사람의 검사 결과를 잘못 본 게 아닌가 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최종 진단을 위해 골수검사를 했다. 뼈에서 액체를 뽑는 검사였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뼈에는 마취가 안 돼서 많이 아플 거예요. 그래도 검사 중에는 절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정말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이를 너무 세게 악무는 바람에 이가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최종 확진까지는 2주가 걸렸다. 다행히 진단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었다. 당시 담당의는 “현재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으므로 항암 주사제 치료와 경구 약을 병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사제가 몸에 들어오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축 늘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사 치료는 약 다섯 번 정도 받았는데, 맞을 때마다 한두 시간 후면 구토를 했다.


침대와 베개에는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나도 대머리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의사 선생님은 “머리숱은 줄겠지만 치료가 안정되면 빠지는 양도 줄어들 것”이라며 위로해 주셨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머리숱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한 달가량 입원 치료를 받자 백혈구 수치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뒤, 혈액 수치가 안정되어 퇴원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우족으로 곰탕을 끓여 두셨다.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행복했다. 매일 샤워할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매일 두 번, 12시간 간격으로 약만 복용하면 되었고, 2주마다 외래에서 혈액검사를 하면 되었다.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집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로 유난히 아픈 사람들에 대한 소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것들이다.


나는 독실한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좋아한다. 스님은 한 영상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와, 살았다”라고 해 보라고 하셨다. 이런 작은 행동이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하셨다.


솔직히 삶은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나는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잊지 않으려 애쓴다.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쓴다. 내 아내와 아빠의 슬픈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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