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싶은 번역가, 일하기 싫은 번역가

by 키다리 준

좋은 번역가, 일하고 싶은 번역가는 어떤 사람일까?
우리나라에는 수백 개가 넘는 번역 회사가 있다. 해외 원서를 번역해 출간하는 출판사까지 포함한다면 수천 개에 달하는 다양한 업체들이 있다는 뜻이다.
몸을 담고 있는 곳이 기술 번역*을 주로 하는 번역 전문 업체이다 보니 출판 번역 쪽과는 바라보는 관점이 다소 다를 수 있다. 말했듯이 번역 회사만도 수백 개가 넘다 보니 회사마다 관리자마다 어떤 번역가를 원하는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번역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하다고 생각한다. 국내는 물론 해외 여러 업체의 관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통으로 나왔던 의견이니 믿을만하지 않을까.
*기술 번역: 여기서는 간단하게 출판 번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번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반 문서, IT, 계약서 등은 물론 게임, 영상 번역까지도 진행한다.

일하고 싶은 번역가는 5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1. 번역 실력이 뛰어난 번역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어떤 번역 작업을 요청해도 뛰어난 솜씨로 번역해서 돌려주는 번역가라면 누구나 앞다투어 작업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번역 실력은 단순히 언어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번역이 그렇지만 특히 일부 기술 번역 분야에서는 뛰어난 언어적 능력보다 꼼꼼한 검색 실력이 더 필요한 경우가 있다. 다양한 검색 경로를 통해 작업하는 번역물의 분야를 탐색하고 그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스타일을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탄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2. 시간을 잘 지키는 번역가
시간이 지나 납품되는 번역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객이 번역 회사에 작업을 요청하면 일정 조정 등 몇 가지 내부 프로세스를 거친 다음 프리랜서 번역가에게 작업을 전달한다. 대부분 메일로 전달하는데 이때 항상 납품 시간을 지정해서 보낸다. 회사마다 세부적인 프로세스는 다르지만 대부분 번역 후 검수와 QA라는 품질 확인 단계를 거친 다음 고객에게 납품한다. 이때 고객이 요청하는 경우 최종 번역물을 워드나 PPT 같은 문서로 편집해서 전달하기도 한다.
고객이 관대하게도 일정을 여유롭게 짜준 덕분에 일정에 대한 압박 없이 번역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그냥 없다고 보는 게 심신의 건강에 좋다.
기술 번역 쪽은 시간과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빡빡한 일정으로 작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 만큼 납품 시간 안에 번역물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프리랜서 번역가를 준비하거나 성실하게 작업에 임하고 있는 대부분의 번역가분은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수년간 이 업계에 있으면서 일정을 지키지 못하는(혹은 안 지키는) 번역가를 심심치 않게 봐오며 느낀 바다. 믿으셔도 좋다.
3. 생산성이 뛰어난 번역가
영어 번역을 기준으로 할 때, 평균적인 번역가의 생산성은 8시간 기준 약 2천~3천 단어 정도이다. 물론 이보다 적은 이도 존재하고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번역을 처리하는 분들도 있다.
프리랜서에게 있어 생산성은 곧 일당이자 월급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분량을 처리하느냐가 짧은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가느냐와도 직결되니까.
이와 달리 번역 회사의 입장에서 생산성이 뛰어난 번역가를 선호하는 것은 빡빡한 작업 일정과도 관계가 있다. 말했듯이 고객은 언제나 빠른 시간 안에 결과물을 받아보고 싶어 한다. 어떤 때는 아침에 전달하고 퇴근 전까지 받아보기를 원하기도 한다. 이런 짧은 일정을 소화하려면 높은 생산성을 가진 번역가가 섭외 1순위로 떠오를 수 밖에 없다. 기본적인 번역 품질만 유지하는 번역가라면 생산성이 높은 번역가에게 작업을 계속해서 전달할 수 밖에 없다.
4. 연락이 잘 되는 번역가
프리랜서 번역가분들을 보면 거의 모두 혼자 일한다. 그런 만큼 일반 직장인과는 시간 운용이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이 중 심심치 않게 도저히 연락이 닿지 않는 번역가분들이 있다. 이메일, 전화, 문자, 카톡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도 연락이 안 된다.
프로젝트 매니저가 작업을 위해 연락한다는 건, 대부분 새로운 작업 진행을 위해 작업 가능 여부와 일정 등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가장 먼저 연락이 가는 번역가가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판단 하에 문의하는 것이지만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연락이 안 된다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다음 순위의 번역가에게 요청하게 된다.

문제가 되는 건 번역하는 중간에 발생한다. 번역을 시작해서 납품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희망사항일 뿐이다. 간혹 고객이 추가적인 요청을 하거나 누락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면 빠르게 번역가에게 연락하여 변경된 사항을 알려줘야 상호 간에 의미없이 힘들이는 상황을 피하게 된다. 연락이 되지 않는 동안에도 번역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추가적으로 번역된 부분은 필연적으로 수정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힘들여서 번역한 부분을 고쳐야만 한다면 얼마나 힘빠지는 일인가.
이런 복잡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열어놓는 것이 중요하다.
5. 전문 분야 지식이 있는 번역가
법률 문서의 영한 번역을 진행해야 한다면 영어를 전공한 번역가와 법률을 전공한 번역가 중 누구에게 요청할까? 나라면 법률 전공자에게 먼저 요청을 한다.
기술 번역은 상당히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실생활에서 보는 거의 모든 문서를 포함하여 IT, 패션, 법률, 의학, 특허, 게임 등등 전문적인 분야에서도 활약한다. 일반적으로 많이 보는 사용자 설명서나 웹사이트에서 보는 회사 소개, 여행지 소개 등은 그다지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법률이나 의학 등은 사용하는 용어부터 일반적인 언어와 상당히 다르다. 특히 용어를 잘못 번역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전문 분야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꼭 변호사나 의사, 간호사일 필요는 없다. 해당 분야를 전공해도 되고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관련 업계에 종사해보았으면 된다. 그것도 아니라면 준수한 번역 실력을 바탕으로 꼼꼼한 검색을 거쳐 원하는 전문 분야의 번역 경험을 하나하나 쌓아온 경력이 있어도 된다.

일하기 싫은 번역가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이 함께 일하고 싶은 번역가의 특징들을 반대로 적용해보면 된다. 기준 이하의 번역 품질, 잦은 납품 시간 위반, 낮은 생산성, 어려운 커뮤니케이션, 전문 지식의 부재.

그런데 사실 진짜 일하고 싶은 번역가는 따로 있다.
왜냐고? 기본적으로 성실한 번역가들은 위의 기준을 대부분 충족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까지는 하면서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는 거다. 물론 이해는 한다. 여기서부터는 단순한 번역 이상의 노력이 들어가니까.
1. 언제, 어느 때라도 일정한 번역 품질 수준을 유지하는 번역가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다. 사람마다 생활 리듬이 다르고 그때그때 내부 혹은 외부의 변수가 발생한다. 내 몸이 아프다거나 가족이 아프다거나, 한참 번역을 했는데 저장을 안 했다거나 컴퓨터가 통째로 날아갔다거나. 실제로 이런저런 일들이 꽤 빈번하게 발생한다.
본인의 번역 실력과는 별개로 발생하는 일로 인해 결과물의 품질이 낮아지는 일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을 작업을 전달한 업체 입장에서 이해해야 하느냐는 별도의 문제이다. 이런 변수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일정 이상의 품질을 유지하는 번역가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한 번역가분은 평소와 다름없이 번역물을 납품 시간 전에 전달했다. 곧바로 추가 작업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했으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각하게 몸이 안 좋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번역을 진행하는 내내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좀 휴식을 해야 해서 추가 작업은 진행이 힘들다고 고사하셨다. 작업 자체는 다른 번역가에게 요청했으나 괜찮아지시면 말씀해주시라고 따로 연락을 드렸다. 본인의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주신 게 감사했다. 별것 아닌 본인만의 사정으로 일방적인 작업 취소 통보나 납품 일정 조정 요청을 해오는 번역가들도 이따금 있었기에 그분을 더욱 신뢰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 고객이 전달한 번역 지침을 꼼꼼하게 지키는 번역가
번역 작업을 할 때면 번역할 문서만 하나 덩그러니 전달받을까? 그럴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업체에서 진행하는 정기적인 작업에서 문서만 받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보통 번역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주요 지침과 스타일 가이드, 용어집 등이 따라온다.
이 지침과 스타일 가이드 등을 읽어 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분량도 상당하고 지침을 읽고 숙지하는 데 드는 시간에는 번역을 못 하니까. 그 말인즉슨 돈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프리랜서 번역가들은 지침이나 스타일 가이드를 보지 않고 번역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본인은 티가 안 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지침 몇 장, 스타일 가이드 몇 장만 읽어봐도 바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친근한 말투를 사용해야 하니 딱딱하게 ~하시오, ~해야 합니다 같은 말투는 지양하고 ~할까요, ~는 어때요? 같은 말투를 사용해달라고 적혀있는데, 말끝마다 ~입니다, ~하시오 라고 적혀 있다면 누가 모를 수 있을까.
그러니 지침을 꼼꼼하게 지키는 번역가도 티가 날 수 밖에 없다. 이런 번역물을 받아보면 본인의 시간을 투자한 것이 보이기에 고마움이 느껴진다. 당연히 이런 정기적인 작업이 오면 1순위로 요청하고 싶은 번역가가 된다.
3. 고객 피드백을 잘 적용하는 번역가
번역물을 전달하고 고객이 한 번에 만족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객도 번역 업체도 번역가도 모두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경우는 참 드물다. 특히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서는 서로 합을 맞추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고객 또한 그 부분에 대해 대체로 이해하고 있다.
이 합을 맞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 고객 피드백이다. 전체적으로 번역이 좋지 않다며 뭉뚱그려서 말하는 경우도 있고, 간단하게 메일에 몇 가지 지적사항만 전달하기도 한다. 몇몇 고객은 자사에서 가지고 있는 고유 양식에 맞춰 피드백을 전달한다. 이 피드백은 정리되어 후속 작업을 진행할 번역가에게 전달되는데 이때부터가 중요하다. 처음 작업하며 맞춰지지 않는 부분은 괜찮지만 피드백으로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어나 지침 등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고객 쪽에서도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번역가 입장에서는 지침과 스타일 가이드, 용어 등에 더해 지켜야 할 부분이 늘어나는 만큼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업체와 합을 맞춘 번역가들은 해당 업체의 주요 프리랜서 번역가가 된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쉴 새 없이 작업을 요청하며 괴롭(?)힌다는 뜻이다.

여기까지 일하고 싶은 번역가가 누구인지 장황하게 썼지만 이게 꼭 정답은 아니다. 번역 업체마다 고객의 성향이 다르고 내부의 프로세스도 조금씩 차이가 나니까. 다만 번역가를 준비하는 예비 번역가와 현업으로 번역을 하고 있지만 약간의 조언이 필요하신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다음 편에서는 번역 품질을 결정하는 기준과 평가 지표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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