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이 아니라 CAT이에요

by 키다리 준

고양이는 언제나 옳다. 나 역시 고양이 러버인지라 고양이 꼬물꼬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Cat이 아니라 CAT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혹시라도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오신 독자분이 계시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도대체 CAT 툴이란 건 무엇일까? 고양이만큼 귀엽지는 않지만 번역하는 데는 도움을 많이 주는 녀석이다. CAT 툴의 CAT은 “Computer Aided Translation” 또는
“Computer Assisted Translation”의 약자이다. 즉,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번역을 한다는 소리인데, CAT 툴은 소위 기계 번역이라고 말하는 MT(Machine Translation)와는 다른 개념이다. 번역가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번역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만 말하면 도대체 어떻게 도움을 주는 것인지 전혀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CAT 툴의 종류와 기능에 대해 알아보고, 기계 번역과의 차이점에 대해 간단히 살펴볼 예정이다.

먼저 CAT 툴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자. CAT 툴에 따라 윈도우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맥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툴도 있으며, 컴퓨터에 설치하여 사용하는 로컬 기반 툴과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브라우저 기반 툴이 있다. 애플을 사랑하는 맥 사용자에게는 슬픈 소식이지만 로컬 기반 CAT 툴은 대부분 윈도우 기반이다. 그러다보니 맥 사용자는 패러렐즈 데스크톱(Parallels Desktop)이나 버추얼박스(VirtualBox) 같은 가상화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윈도우를 설치한 다음에야 일부 로컬 기반 툴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 마시라. 시대가 변하며 많은 업체들이 브라우저를 기반으로 하는 CAT 툴을 이전보다 많이 사용하는 덕분에 맥북 유저들에게도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으니까.


CAT 툴 시장에는 메이저라 부를 수 있을 만한 몇 개 업체와 그에 따르는 수많은 신생 업체들이 있다. 이 중 많은 업체에서 사용하고 있는 툴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1. SDL Trados: 영국에 본사를 둔 SDL에서 제작한 번역 프로그램이다.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어느 정도는 다른 CAT 툴의 기본 토대를 제공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SDL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번역 회사로도 유명한데, 자사를 통해 진행되는 번역은 자사 툴로 진행하기에 지금도 SDL과 관련된 수많은 업체에서 SDL Trados를 사용하여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로컬 기반의 툴로 컴퓨터에 설치해서 사용해야 하며 용량이 꽤 있는 편이다. 현존하는 툴 중 가장 많은 업체에서 사용하긴 하지만 가격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 매년 새 제품이 나올 때면 100만원이 넘는 가격을 주고 사야 한다. 다만 새 제품이 나올 때는 전년도 제품을 할인하기 때문에 2021년 버전이 나올 때쯤 2020년 버전을 사면 꽤나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한 번 사고 나면 4~5년 동안은 호환이 잘 되는 만큼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할 계획이라면 큰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 IT, 마케팅, 의학, 법률 등등 다양한 분야의 번역물을 번역할 수 있다.
2. MemoQ: 게임 번역은 memoQ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게임의 번역에 사용되는 번역 툴이다. 게임 번역으로 유명한 국내 L사에서 memoQ의 한국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만큼, 게임 번역을 전문으로 하고 싶다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툴이다. 물론 게임 번역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SDL Trados와 마찬가지로 각종 분야의 번역에 사용되고 있으며, 프리뷰 등의 기능에서는 여타 툴보다 좋은 성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온라인 툴도 있지만 역시 로컬 기반 버전이 성능 면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행히 SDL Trados보다는 가격이 낮은 편이다. 물론 비교해서 말이지만.
3. Wordfast: Wordfast 역시 시장에 나온 지 20년이 넘은 전통의 강자다. TransPerfect라는 글로벌 번역 업체에서 상당히 많은 번역을 Wordfast로 진행하고 있다. 상당한 분량의 의학 번역을 처리하는 업체인 만큼 해당 업체에서 의학 번역을 진행하고 싶은 번역가는 배워두면 좋을 툴이다.
4. Memsource, Smartcat, Smartling, XTM: 여러 가지 툴을 한데 모아놓았는데 여기 소개하는 툴은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최적화되어 있는 툴이라고 보면 된다. 즉, 브라우저 기반 툴이다. 여기 있는 툴로 작업을 받았다면 책상 위의 데스크톱에 목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 필요하다면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하다못해 핸드폰으로도 접속해서 번역을 진행할 수 있으니 접근성 하나로는 최고라고 볼 수 있다. Moravia라는 글로벌 번역 업체에서 상당수의 작업을 Memsource로 진행하고 있으며, Smartling이나 XTM은 몇몇 글로벌 업체의 주요 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용법도 상당히 간단하여 한 번 배우기만 하면 금방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5. Xbench: 엄밀히 말하면 CAT 툴은 아니다. 하지만 CAT 툴의 단짝과도 같은 QA(Quality Assuarance) 툴이기에 여기서 추가로 소개한다. QA 툴은 번역 후 확인해야 할 맞춤법이나 숫자 오류, 용어 및 문장 일관성 등을 한 번에 확인시켜주는 유용한 툴이다. 눈을 하나하나 보면 1시간 걸릴 작업이 이 툴 하나면 10분이면 끝난다고 보면 된다. Xbench는 여러 QA 툴 중에서도 각종 CAT 툴과 호환성이 좋고 훌륭한 QA 성능을 보여준다. 1년에 10만원 정도를 내야 하는 구독형 상품이긴 하지만 본인의 번역 품질을 올리는 데는 10만원이 아니라 100만원 이상을 가치를 해 줄 툴이라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필자는 Xbench 만드는 회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유료 광고 같은 것도 받은 적 없는 순수한 추천이니 믿으셔도 된다.
이 외에도 세상에는 수많은 툴이 존재한다. 열 손가락으로도 세지 못할 만큼 많은 툴이 있으니 인터넷을 통해 차근차근 알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툴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도대체 어떤 기능이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CAT 툴의 기능을 안다면 왜 번역을 할 때 사용해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 필자는 기술 번역 회사에서 근무한다. 출판 번역 과는 관계가 없으니 출판 번역 쪽에서도 CAT 툴을 쓰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건너 건너 들은 바로는 출판 번역 쪽, 특히 문학 쪽 부문에서는 거의 혹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이는 문학 번역과 기술 번역이 뿌리부터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문학은 지칭하는 대상 하나에도 수많은 메타포와 다양한 지칭어를 사용한다. 그가 바람이 되었다 땅이 되었다 하늘이 되었다 꽃이 되기도 하고. 임이 그리운 님이었다가 나라가 되었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술 번역에서는 그래선 안 된다. 워드 프로그램에서 Save는 언제 어디서나 '저장'이어야 한다. '저장'이 되었다가 '저축'이 되었다가 하면 대형 사고다. 이 말인즉슨 일관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CAT 툴의 핵심 기능이자 가장 주요한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얼마나 많은 분량의 작업이 되었든 얼마나 오랜 기간을 두고 작업을 하든 바로바로 일관된 번역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기능의 핵심 요소는 바로 TM(Translation Memory)과 TB(Termbase)다.

TM은 번역 메모리이다. 기존에 어떤 번역을 했다면 그 기록은 고스란히 TM에 쌓이게 된다. 즉, CAT 툴 작업에서 TM을 걸어놓고 A를 1로 번역하면 그대로 TM에 저장되며 해당 TM을 사용하면 언제 어떤 때라도 A라는 번역이 나왔을 때 자동으로 1이 번역 기록으로 나타나게 된다. 나타난 번역을 그대로 사용하면 되므로 많은 시간이 단축된다. 물론 잘못된 번역을 그대로 TM에 기록해 둔다면 번역 품질이 지속적으로 나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TM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번역의 품질을 얼마나 잘 유지하고 높이느냐를 결정하기도 한다.
TB도 TM과 마찬가지로 저장된 번역을 꺼내어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다. 다만 TM은 단어부터 문장, 문단까지로 저장할 수 있는 반면 TB에는 용어만을 저장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용어가 일반 분야와는 다른 몇몇 분야(의학, 법률, 게임, UI 등)에서는 TB 관리가 중요하다.
번역 회사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한다면 이 외에도 유용한 여러 기능들이 있지만 번역가 입장에서는 TM과 TB가 가장 주요한 기능일터다. 여타 기능은 후에 다시 풀어낼 기회가 있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CAT 툴에 대해 이야기하면 MT(기계 번역)가 아니냐고 되묻기도 한다. 관련 내용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MT도 기본적으로는 수많은 문장을 저장하고 이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번역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TM의 기본 기능과 동일해 보이기 때문이다. 즉, 번역문을 저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른 번역에 적용한다는 관점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MT는 수많은 번역문을 저장하고 동일한 문장이 아니더라도 데이터베이스 내의 문장들을 기반으로 새로운 번역문을 만들어낸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문장을 번역할 때면 터무니없는 번역 결과물이 나온다. 물론 구글에서 도입한 NMT(Neural Machine Translation)라는 신경망 기계 번역이 나온 후로는 스스로 기계가 학습하는 덕분에 조금 더 나은 번역을 볼 수 있어졌다. MT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너무 깊어지니 MT 이야기는 여기서 멈춰야겠다.
CAT 툴은 MT와는 달리 사람이 주가 되어 번역을 진행한다. 즉 CAT 툴의 의미처럼 컴퓨터의 도움을 받을 뿐 컴퓨터가 주도하는 번역은 아닌 것이다. 기존에 번역한 기록이 있다면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그 번역을 사용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용어를 찾을 필요 없이 TB에 등록된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행위는 사람이 주도하며 품질의 책임도 번역을 하는 사람에게 있다.

툴은 사용해도, 사용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그건 번역가 개인이나 업체의 선택일 뿐이니까. 하지만 당신이 번역가라면, 번역가를 꿈꾼다면 꼭 CAT 툴을 사용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미 번역을 업으로 삼는 이라면 좀 더 체계적으로 자신의 번역을 정리하고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작업의 속도를 올려 생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고, 번역을 시작하는 입장이라면 번역 업체, 에이전시에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 되기 때문이다.
툴을 사용하지 않는 작업도 많이 있다. 필자도 그런 작업을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업체에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당신도 사용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워드 파일, PPT 파일을 받아서 본인 스스로 CAT 툴을 사용해 작업하는 건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그리고 굳이 이런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번역가로서 당신의 가치는 높아질 것이라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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