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변화와 개인의 삶

내가 변화의 희생자가 되면 어떡하지?

by Dr Jang

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AR6)에 의하면 기후변화는 확실하다.

변화하는 기후에 대해 여러 가지 뼈를 깎는 대응을 하지 않으면 우리 인류의 미래는 밝지 않다.

그래서 다양한 경로로 여러 가지 대응책이 논의되고 있다.


거대한 변화는 늘 희생을 요구한다.

새로운 세상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수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힘없는 개인이 희생을 당한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라는 세상이 나타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하거나 고통을 당했고 우리는 그 과실을 먹고 있다.


이는 코로나 사태와 유사하다.

펜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인류는 수많은 노력을 하여 겨우 진정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다. 전염병이 번졌으니까 그랬겠지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각종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개인이 희생한 것이다.


지금이야 코로나 대응이 익숙하지만 초기의 공포감은 단순 독감 혹은 열감기 환자들, 증상이 유사한 다른 환자들을 기피하는 의료체계에 의해 제대로 된 진료를 못 받아 고통을 받거나 심지어 죽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코로나 대응이 성공했다고 하지만 희생당한 개인 혹은 가족의 입장에서는 한 세상이 사라진 것이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코로나 대응은 성공한 것이 아니다.


걱정되는 것은 환경교육에서 늘 이야기하는 기후변화 대응이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적정한 대응과 사회의 변화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인데 기후변화 대응에 대해 너무 쉽게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전체주의가 아닌 이상 개개인이 소중한 데 인류 앞에 놓인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개인을 보지 못한다면 그 당사자에게 기후변화 대응은 재앙인 것이다. 그 사람은 희생을 당하느니 그냥 이대로 사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말이다.


환경교육에서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하지 쉬운 말로 '기후위기를 우리가 해결할게요~'라고 쉽게 말하는 아이들의 해맑은 눈동자를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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