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발전의 관점이 중요한 이유
최근 대구에서 유명한 두꺼비 서식지인 망월지 인근 토지를 수성구청에서 사들여 생태학습관을 짓는다는 뉴스를 접했다.
망월지는 두꺼비가 많이 서식하는 연못인데 이러한 사실이 수년 전부터 알려지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두꺼비는 환경부가 정한 포획금지종이다. 보호받아야 하는 생물인 것이다.
문제는 두꺼비가 사는 영역과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영역이 겹친다는 사실이다.
환경 문제에서 영역이 겹친다는 이야기는 삶의 공간이 겹친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단순히 공간의 중복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경제체제 내에서는 두꺼비의 삶과 사유재산권의 충돌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아마도 두꺼비를 지키자는 세상의 노력이 인근 땅 주인들에게는 못마땅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연환경보존지구와 같은 것으로 지정이 되면 사유재산의 행사를 극도로 제한받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주 대표가 저수지의 물을 빼버려 번식기의 두꺼비가 떼죽음 당한 일이 생겼다.
뉴스 등에서 몰상식한 일이라며 연일 뉴스를 내보냈고 결국 법원에서 벌금 2000만 원의 유죄를 인정받았다.
이런 환경문제를 보면서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환경문제의 복잡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유재산의 행사를 제한하면 당사자는 당연히 반발하게 마련인데 공익성이라는 이유로 행정기관 등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무상의 공익성을 강요할 게 아니라 적절한 경제적 대책과 함께 공익성이라는 명예라는 부여 했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되었을 것이다.
좀 더 지속가능성의 관점으로 접근했다면 서로 만족했을 이야기가 행정기관의 늑장 대응으로 애꿎은 두꺼비의 죽음, 지주 대표의 처벌을 통해서 겨우 이뤄졌다. 아쉬운 대목이다. 결과는 같지만 두 존재의 희생이 따랐던 것이다.
환경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삶을 좀 더 생각하게 되었다.
당사자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환경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인간이 희생당할 수 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 되어야 한다. 창의성이 중요하다. 그냥 한쪽 면에서 주장하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