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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Jang Oct 12. 2019

NO. 10 토이스토리 4

장난감의 독립과 애잔함

열 번째 이야기는 토이스토리 4이다. 토이스토리는 워낙 많이 알려져서 더 할 이야기가 있겠냐 생각하겠지만 제작사인 픽사는 이를 자아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하여 또 다른 감동을 제공해 주었다. 장난감이라는 어린 시절 추억과 세월의 흐름에 따른 애잔함을 멋진 영상으로 만든 이 영화는 아이들은 재미나게 볼 수 있지만 어른들은 두고 온 자신의 장난감이 생각날 법한 영화이다. 아마도 대부분 어른들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같은 종류를 본 후 그 시절 기억이 확 밀려오는 경험을 한 두 번은 했을 것이다. 토이스토리는 이런 어른들의 심리와 어린이들의 장난감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잘 조합한 애니메이션이다.


무엇을 같이 이야기할까?


● 옛날에 나는...


우리들이 어릴 적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마도 ‘내가 어릴 적에는~’라는 말일 것이다. 어찌 보면 나에게는 가장 큰 기억의 순간이지만 듣는 사람은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아, 또 저 소리’라는 생각을 자주 하였을 것이다. 듣는 사람, 즉 아이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내용을 이야기해 봤자 아이들과 우리는 다른 공간과 시간을 살아온 사람이기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난감의 경우는 좀 다르다. 어른들이 눈높이를 낮추고 어린 시절 동심으로 돌아간다면 충분히 공감을 공유하며 이야기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장난감은 그 시절의 기억과 냄새, 촉감, 향기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묘한 힘이 있다.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자신의 장난감 이야기를 한다면 아이들도 다른 종류의 ‘내가 어릴 적에~’라는 대화와는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아 보자.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1개, 내가 좋아했었던 장난감 1개,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이야기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장난감을 매개로 대화를 도전해 보자.     



● 자아의 독립성


장난감이란 자아는 주인에게 종속된다. 주인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장난감은 늘 외롭고 쓸쓸하다. 그들에게 주인의 인정은 자아 획득과 관련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필사적으로 주인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쓴다. 장난감의 운명은 자세히 보면 아이들과 같다. 아이들은 늘 부모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쓴다. 사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이용하여 바른 길로 이끌거나 혹은 자신이 아이들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져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장난감들도 주인에게 선택되어 인정받기를 간절히 원한다. 특히 인형 ‘개비 개비’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여러 장난감을 괴롭히지만 결국 그녀도 인형으로서의 자신을 찾기 위해 그러한 일들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새로운 등장인물인 버니도 약간은 거칠고 색다르지만 주인을 찾기 위한 노력을 엇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원조 스타인 우디와 보핍이 그들의 감정을 확인하며 더 이상 주인을 바라보는 삶이 아닌 다른 장난감을 도우는 능동적인 자아로 성장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장난감이라면 누구나 따를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거슬렀다. 새로운 이야기를 펼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제작사의 능력에 감탄한다.          


내면에 귀 기울이기


재미있는 것은 버즈 라이트의 모습이다. 능동적이지 못한 그는 자신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운다. 우습기도 하지만 결정을 하지 못하고 남 따라 하기를 잘하는 필자에게는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비록 정해진 대사가 나오는 버튼을 눌러 내면의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판단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일깨울 수 있는 명확한 소리가 나오자 버트 라이트는 과감하게 능동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늘 외부 소리에 민감한 우리에게 만약 자신도 모르는 내부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어떨까? 아마도 우리는 결과야 어떻게 되든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버즈 라이트 같은 엉뚱한 내면의 소리조차 없는 우리는 흔히 타로 점을 보거나 사주를 보거나 하는 식으로 누군가의 은밀한 소리를 들으려고 애를 쓰는 것을 아닐까?

아이들에게도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자. 아마, 어른이 부모도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내면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자신의 소리를 듣고자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행복이나 기쁨은 거기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 개체의 소중함


이 영화에서는 포크라는 재미있는 캐릭터가 나온다. 쓰레기통을 뒤져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포크는 자신의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하는 쓰레기로 인식한다. 그래서 늘 문제를 일으키기는 하지만 결국 장난감이라는 근사한 개체가 된다.

개체는 신비롭다. 아이들이 소중한 이유는 그들이 인류라는 종(種)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누구나 소중하다는 것이 바로 현재 민주주의의 정신이다. 포크도 마찬가지다. 미성숙하고 장난감으로서의 정체성도 불안하지만 결국 하나의 장난감으로 성숙한다.

아이들은 불안해 보이고 미성숙하지만 포크처럼 많은 대화와 이해를 통해 성숙해 간다. 결국은 하나의 완성된다는 말이다. 거기에는 우디와 같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의 개체를 완성하는 것은, 특히나 인간과 같이 자아가 강한 경우에는 인류라는 종의 유전자보다는 개체 하나하나를 보듬는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쉽지는 않다. 알다시피.     


● 세월의 애잔함


우디와 보핍의 만남은 이 영화에서 애잔함을 담당한다. 그들은 서로가 가지는 감정은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 채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이러한 이별은 주인을 따라야 하는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이뤄졌다. 자신들이 거쳐 온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느끼는 세월의 애잔함은 사실 우리들 같은 어른들에게 감동을 준다. 내가 어떻게 이 나이가 되었지?라는 물음은 바쁘게 어른의 역할을 열심히 하던 어른들이 가끔 자신을 되돌아보는 주요한 물음일 것이다.

장난감의 주인이 어른이 되고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장난감이 새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어느덧 장난감들은 인생의 여러 면을 겪었던 것이다. 많은 경험이란 사실은 세월이 흘렀음을 보여 주는 것이자 어린 세대처럼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걸림돌이 된다. 어쩌면 경험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삶의 족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쌓은 세월은 어느새 애잔함으로 다가온다. 어찌 되었던 나는 그러한 것을 겪었고 지난 세월의 추억은 애잔함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옆에 있는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과 이야기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토이스토리는 장난감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애니메이션이다. 아이들의 물활론적인 시선에 초점을 맞춰 혹시나 장난감이 살아있지는 않을까?라는 상상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를 가진다. 적절한 캐릭터와 이야기, 초기 3D 애니메이션 영화를 주름잡았던 이야기가 벌써 4편이 되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장난감이 가지는 숙명을 벗어버린 ‘우디’와 ‘보핍’의 이야기가 신선하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갈까?라는 궁금증도 생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소재로 자녀들과 이야기를 해 보자.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자. 사실, 우리가 어린 시절 장난감은 살아 있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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