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털린 역설(Easterlin Paradox)이라는 이론이 있다. 부의 증가가 행복의 증가로 무조건 이어지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1974년 발표한 이 이론은 그동안 부의 증가가 행복의 증가로 이이지지 않는다는 증거로서 많이 사용되었다.
이에 반해 이스털린의 역설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경제학자도 존재한다. 소득의 증가와 행복은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우리나라 통계청은 삶의 질 종합지수를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살펴보면 국민 1인당 GDP의 증가와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를 비교해본 결과 완만한 상관성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항상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행복과 소득은 정비례할까? 반비례할까? 이런 물음이 생긴다면 우리의 머릿속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만 할 것 같은 압박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둘 다 섞여 있을 가능성이 매우 많다. 가난하면 아무래도 물리적 불리함 때문에 행복에 대해서 불리할 수 있을 것이고 부가 많이 축적된 경우에는 물리적 조건이 대부분 만족되어 행복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일종의 역치(閾値, threshold value) 개념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유발 하리리는 사피엔스(2017)에서 행복이 생물학적 측면과 심리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였다. 생물학적인 만족이 바로 행복이며 그것을 통해 인간은 생존을 계속 이어 왔다고 보았다. 심리적 측면의 행복은 주변들 둘러싼 기대치와 이에 대한 만족 여부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생물학적으로 만족하는 행복은 물리적인 면이 강하고 심리적 행복은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다. 물리적으로 불리한 가난한 경우에는 생물학적으로 불편한 경우가 많아 행복이 낮아질 수 있을 것이며 부가 축적된 후에는 심리적 행복을 좀 더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만일 행복을 계산식으로 아주 단순하게 만든다면 다음식과 같은 것이다.
행복 = 물리‧생물학적 만족(기본 조건) + 심리적 만족(만족 조건)
하지만, 이렇게 본다면 궁극적으로 행복은 인간 내부의 문제다. 심리적 만족이라는 것도 애초에 인간 내부에서 발생하는 흐름이다. 호르몬의 영향이고 신경 반응의 문제다. 자칫 잘못하면 기계적인 환원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는 나중에 다시 논의할 문제다.
지속가능발전이 추구하는 여러 가지 중 자연 생태적 조건과 경제적 조건의 만족은 사회적 조건의 만족과 관련을 이뤄야 한다. 만족은 기본 물리적 조건에서 시작하여 인간만의 미세한 문화에까지 적용이 된다. 그것을 통해 인간은 행복과 만족을 느낀다. 마슬로우의 욕구 5단계와 같이 기본 조건(자연, 경제, 사회)과 만족 조건(자연, 경제, 사회)은 함께 이뤄져야 하며 어느 것이 먼저냐를 따지면 기본 조건이 먼저일 것이다.
이스털린의 역설이나 그와 반대되는 연구결과 모두를 관통하는 것은 행복은 물질적 조건이 기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지속가능발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조건에서부터 행복한 삶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발전의 수많은 영역들을 일정한 체계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지속가능발전은 환경적 조건의 악화와 지구 자원의 유한성에서부터 시작했다. 이것은 인간 생존의 기본적 바탕으로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인간은 존재할 수가 없다. 따라서 지속가능발전에서 환경적, 물리적 조건의 영역은 가장 우선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스털린의 역설을 통해 우리는 물리적 조건이 행복의 필수적인 조건임과 동시에 인간은 물리적 조건을 넘어선 무엇인가를 가진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지속가능발전이 가지는 수많은 영역들은 일종의 약한 위계성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관점으로 지속가능성을 이해한다면 좀 더 이해가 수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