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Reboot!!!

당황하지 않고 여러 취미 즐길 준비 끝!!

by Dr Jang

한 때 빠져 살았던 취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다.


난 다양한 것에 호기심을 가졌다. 새로운 세상이라고 할까? 특히 어릴 적에는 신기한 것이 무지 많았다. 모든 동물의 새끼들이 사물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가지듯 말이다.


커가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경험은 성장하게 했고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지금에야 느끼지만 몸의 나이와 내가 느끼는 나이는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듯했다. 몸은 어른이지만 여전히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만, 어른의 호기심은 월급을 바탕으로 하는 신기한 물건 구매로 이어지게 되었다. 여느 어른들처럼 말이다. 여담이지만 때마침 발달한 인터넷 쇼핑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하지만 그때 나 자신은 이러한 것들을 취미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나름 원인을 찾아보았다.

원인은 그 당시 분위기(80년대, IMF전) 였다.

과거 우리는 뭔가 한 가지에 몰두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평생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을 동경했고 여러 가지를 건드리는 사람은 끈기가 없다 했다.

끈기, 인내가 그 시절의 구호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전문가의 신화로 이어졌다. 뭔가 한 우물만 판 전문가의 말은 권위를 가졌다.


취미도 그러했다.

뭔가 빠져들어 별세계를 본 사람이 최고인 듯한 분위기였다.

한 우물을 파는 사람에 대한 신화는 아마, 인간의 균일성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다. 근대에 생겨난 이러한 생각은 인간 의식의 단일성을 주장하였다. 인간의 이성은 신에게 부여받은 것이어서 완벽한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 이성이 관심을 가진 취미는 이것저것 일 수 없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 순수해야 하는 것이다.


한 가지에 꽂혀 평생을 가는 취미는 한 직장에서 평생을 근무하는 그 당시 사람들과 같은 맥락이었다. 조건에 따라 직장을 옮기거나 노마드적인 생활은 생각할 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성실 근면 자조의 구호는 근대의 유산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사상적으로 그 시대는 이미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였다. 사상적으로 그랬다는 것이지 사회는 아직 모더니즘적인 세상이었다. 중심이 사라지고 거대담론이 사라진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개인의 분열은 일상인데 말이다.


다시 취미로 말머리를 돌려보자.


개인의 자아는 프로이트 이후 분열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모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귀신이나 유령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취미가 바뀌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밥을 일상적으로 먹다 짜장면(취미)를 처음 먹으면 맛나다. 그런데 늘 꾸준히 짜장면을 주기적으로 먹다 보면 질린다. 다른 테이블에 있는 짬뽕이 먹고 싶다.


만약 이런 맘이 예전에 든다면 나는 끈기가 없는 녀석이다. 한 우물을 파지 못하는 인내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보면 인간은 분열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것을 기웃거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짜장면을 먹다 짬뽕을 먹고 볶음밥까지도 먹고 싶은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솔직히 좀 편해졌다.


집안에 쌓여 있는 여러 가지 취미에 관련된 물품을 보면서 한 우물을 파지 못한 나의 끈기 없음을 탓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취미 경험은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 대한 나의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좀 더 입체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한 우물을 열심히 파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도 자세히 보면 한 우물을 파긴 하지만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변화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한 우물이긴 하지만 우물의 모양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한 우물의 신화를 벗어나니 내가 가진 것들이 다르게 보인다.


나를 좀 더 알게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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