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와 직박구리에 대한 상념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그것이 나에게 끼치는 이익이나 해로움은 나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지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오늘 수업을 하면서 어린 학생에게 질문을 받았다.

“매미는 나쁜 것인가요? 좋은 것인가요?”
아이 수준에서는 정말 당연한 질문이지만 가만 보면 너무 인간 중심적인 질문이다.
대답은 이러했다.
매미가 좋고 나쁨은 없다. 다만 나무의 입장에서는 즙을 빨아먹으니 나쁠 수 있고 나의 입장에서는 아끼는 나무에게 해를 끼치니 좋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이해관계가 없으면 그냥 듣기 좋은 여름 소리를 주는 존재다.
파리나 모기도 마찬가지다. 결국 나와 어떤 관계가 설정되어 있으냐의 문제지 나쁨과 좋음은 없다. 자연은 선악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냥 존재할 뿐이다.
예전 어른들이 이런 말들을 하셨다.
“살려고 나온 생명을 왜 헤치냐?”
개미에 빠져 개미집을 헤집어 놓고 있는 나에게 외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그렇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어른이 되어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직박구리가 죽은 모습을 봤다.
마치 잠든 것 같았는 데 죽었다.
아마도 건물에 부딪힌 모양이다. 예전에도 무슨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예쁜 새 한 마리가 유리문에 부딪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죽은 것을 본 적이 있었는 데 비슷한 사고인 것 같았다.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말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조건이 완성되어 지금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는 상황도 인연이다. 하필이면 그곳을 지나가는 새는 하필이면 수년 전 지어진 이 건물에 부딪혔다. 건물이 지어지지 않던지 새가 그곳을 지나가지 않았던지 창문이 그곳에 설계되어 시공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연이 그렇게 만들어져 직박구리의 죽음으로 이어졌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수록 생명이 죽는 것에 대해 무덤덤해지면서도 애잔해지는 것은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