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병원을 알아 봤다.
아니, 다른 명의를 찾아 봤다.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그에게 들을 수 있었던 수술이라는 말에서 나오기가 쉽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대통령 주치의까지 했던 사람이다.
경력이나 이력으로 봐서는 화려한 모습이었다.
예약도 쉽게 되었다.
서울이었다.
KTX가 있었지만 서울까지 가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냥 여행을 가는 기분으로 가자고,
이후론 병원을 다닐 때 근처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다녔다. 물론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그것도 어려웠지만
병원에 도착하니 국립병원이라 그런지 시설이 좀 그랬다.
시설이 좋다고 진료를 잘 보는 것은 아니지만 시설을 좋으면 장비도 좋을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니 금방 순서가 왔다.
명의 치고는 대기하는 사람도 적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책을 보고 있다 내려놓았다. 가져가 자료를 보더니 래핑이라는 수술 방법을 말했다. 혈관 내 수술 혹은 다른 수술 방법이 있나 싶어 여기까지 왔는 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래핑이란 쉽게 말해 부푼 혈관을 의료용 재료로 감싸서 터지는 걸 방지하거나 터져도 혈액을 흡수하여 출혈량을 적게 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머리를 무리하게 열어서 근원적인 치료가 되지 않고 기껏해야 밴드 같은 것을 감아두는 수술을 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갸우뚱하게 진료실을 나서는 우리에게 의사 한명이 따라 붙었다.
Y대에서 처음 조영술 할 때 생긴 사타구니의 멍울을 이야기를 들어 주면서 자신 같았으면 예전 의학 드라마에서 봤듯이 시술 했던 의사의 정강이를 찼을 것이라고 하면서 공감을 해주었다.
또한 자신의 부인이 우리와 같은 직종이라며 호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생각해보면 진정으로 공감하기 보다는 아내와 같은 특이한 거대 뇌동맥류를 치료해 보고 싶은 열망으로 느껴졌다. 자신이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목숨을 담보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냥 머리 속에서 그 병원의 지웠다.
나중에 보니 실력 있는 의사들은 은퇴 무렵에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한적한 국립병원 같은 곳이나 종합병원 수준의 병원으로 말이다. 그러니 대학병원에 있을 때처럼 난이도 높은 수술을 하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더구나 방법도 예전 것이니 말이다.
두 번째 명의라는 사람도 별 수 없었다.
절망은 깊어져 갔다. 또 다른 사람을 찾아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