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예약한 C 병원에 갔다.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조영술을 해야 명확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데 그러지 못하니 김 빠진 기분이었다.
병원은 조밀한 것이 복잡했다. 모기업의 느낌이 반영된 것 같았다.
병원 가는 길에 본 00을 살려내라는 현수막이 기분을 착잡하게 했다.
좋은 의사를 만나 병을 낫게 하는 것도 일종의 운이 따르는 것 같았다.
의사를 만나기 전 예진이 있었다.
전공의로 보이는 의사가 여러 가지 사항을 묻고 영상자료를 편집해서 한눈에 보기 좋도록 정리했다. 병력도 자꾸 이야기하다 보니 말하는 솜씨가 늘었다.
머리가 희끗한 의사를 만났다.
동맥류가 있었는 데 왜 이제까지 있었냐고 물었다.
아내가 수술 후유증이 무서워서 그랬다고 했다.
자료를 쭉 훑어보던 교수는 큰 사고를 쳤다고 나무랐다.
예전 같으면 쉽게 처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혈관이 위쪽으로 더 부풀어 어디까지 폐쇄를 해야 할지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알고 있었지만 큰 사고를 쳤다는 말에 위축되었다. 그때, 그러니까 10여 년 전에 수술을 했어야 했나?라는 후회가 들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소용이 없다. 어쨌든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검사를 해야 한다며 의사는 밖에서 상담을 받으라고 했다.
좀 있으니 전문 간호사로 보이는 사람이 불렀다.
상담을 진행하는 데 당장 입원을 시킬 기세였다.
영어로 적혀 있는 출력물은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느낌표가 10여 개나 찍혀 있었다. 매우 급한 상황이고 의사는 판단한 모양이었다.
곤란했다. 아직 이 병원에서 치료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냥 의견을 듣고 싶었는 데 당장 입원하게 생겼다. 직장도 그렇고 아이들도 걸렸다.
간호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일단 한 달 뒤쯤으로 입원 검사 날짜를 잡았다.
간호사는 매우 걱정스런 표정과 말투로 우리를 이해해 줬다.
그러면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할 번호를 알려줬다. 직통번호였다. 고마웠다. 일종의 배려였다.
간호사는 만약 상황이 발생하면 근처 병원에서 수술이나 처치를 하고 자료를 보내 주면 판단해 보고 전원 조치를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병원을 다녀 보거나 카페에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미 수술한 환자를 전원하여 받아주는 경우는 잘 없었다. 다른 병원에서 손을 댔기 때문에 자신들은 더 해줄 것이 없다는 태도가 가장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수술 같은 경우는 첫 번째 병원을 잘 선택해야 한다.
일단 수납을 하고 집으로 왔다.
D병원과 E병원 예약은 아직 한 달 정도 남았고 조영술은 A 병원과 C 병원을 한 달 보름쯤 뒤에 예약을 했다. 일단 한 달 동안 판단을 해 보기로 했다. 혼란과 불안이 계속되었다.
나중이 일이지만 집사람은 A 병원을 더 생각했다. 처음 건강 검진한 원장님의 지인 추천이었다. 우리나라 탑이라고 했다. 내 생각은 B 병원 혹은 E 병원이었다. 생각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가족이라 해서, 부부 사이라고 해서 같은 것이 아니다. 개별성과 묘한 동질성, 그게 가족인 것 같다. 대화를 충분히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