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D병원 패스, E병원 진료

계속된 선택의 혼란

by Dr Jang

거의 한 달이 지나도록 결론은 나지 않았다.

3개의 병원 모두 신경외과, 그중에서도 수술을 위주로 하는 의사들을 본 의사들이라 수술이 주는 부담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뇌신경외과의 수술은 늘 콧줄로 상징되는, 의식이 없고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 그런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외과수술 전문의 D병원은 패스했다.

사람이라는 게 만일이라는 게 있다. 만일 그랬더라면, 가정법 과거라는 어려운 말로 배운 이 개념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되었다.

목숨을 담보하는 것에 만일은 그중에서도 가장 절망적이다.


E 병원 진료를 하는 것은 만일이라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세상에 모든 동맥류 관련 의사를 만날 수가 없다는 물리적 한계는 늘 마음 한편에 혹시나 하는 그림자를 남긴다.

E 병원의 경우 영상의학과 의사가 진료를 봤다.

우리나라에서 뇌혈관 내 수술로는 일가견이 있다는 카페 사람들의 이야기와 나름 검색해본 논문의 수가 그런 것 같았다. 만약 뇌혈관 내 시술이 가능하다면 큰 상처에 대한 부담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의사와의 만남은 싱겁게 끝났다.

일단 뇌조영술을 보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조영술을 먼저 했어야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 순서의 압박이 생겼다.

하,,조영술을 먼저 했어야 했다.


일단 조영술 날짜를 잡기로 했다. 뭔가 희망의 끈을 걸쳐 놓고 싶었다. 소위 말해 명의라고 하는 의사는 초진은 쉬우나 재진부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생각하고 싶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조영술 날짜를 잡는 것은 중요했다.

그리고 두 병원 중 한쪽에서 조영술을 해야 했다. 조영술을 하는 병원에서 수술이든 시술이든 할 확률이 더 높은 것이기에 조영술 날짜를 잡은 후에는 어느 병원에서 조영술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판단 기준이 없다.


담당 간호사한테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하고 우리는 복도로 나왔다.


이 병원에서 조영술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시술이냐 수술이냐 라는 선택 문제에까지 고려 범위가 넓어졌다. 그러는 동안 시간을 가고 하나, 둘, 진료를 다 본 환자들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선택을 재촉하였다.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병원 복도에서 진땀이 났다. 아내와 아무리 고민해 봐도 조영술 자료가 없으니 딱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아내는 내심 A 병원에서 조영술을 하고 싶은 눈치이기도 했다.

결국, 고민 끝에 조영술 날짜를 잡기로 했다. 선택의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A 병원과는 하루 차이가 났다. 꽤 빨리 일정이 잡혔다.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의견을 듣고 싶었는데 조영술 자료가 없으니 이야기를 듣기 어려웠다.

그냥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줬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했다. 자료가 없는 의사는 보통 사람과 다름이 없다. 적어도 진료실이라는 공간에선 그렇다. 그들도 섣부른 예단이 주는 부작용을 알기에 말을 아낀다는 느낌은 어느 병원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저무는 노을과 함께 퇴근길 막히기 시작하는 도로와 함께 마음도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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