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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Sep 22. 2017

#37. 퇴휴(退休)는 사치다

인생의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보냈던 경고(?) "준비해라"

우리나라에서 퇴휴(退休)는 사치일 수밖에 없다.

저출산, 고령화, 저금리, 저성장은 노년기 삶의 로망인 휴식을 걷어 차 버렸다.

이젠 싫든 좋든 오래 살 수밖에 없는 시대적 현실을 받아 드리고 준비하는 숙제만 남아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반면에 노후 준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기본 이하다. 오래 살아야 하는 것이 숙명이라면 그에 대한 준비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격이 맞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후 준비는 기본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선택 옵션을 대하듯 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당장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노후 준비는 무슨 노후 준비냐고 나무라는 사람들부터, 그때가 되면 어떻게든 다 살게 마련이라면서 낙관론을 펼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일까?

노후준비 불감증 환자와 같은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당장 먹고 쓰고 즐기는 일에 대한 지출액이 그것을 증명한다.


추석이라는 연중 최고의 명절이 장기 휴가라고 하는 특별한 선물과 함께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공항엔 해외 여행객으로 넘쳐 날 것이 뻔하다. 사상 최고의 휴가일이 될 만큼 토요일부터 시작해서 그다음 주 월요일까지 장장 10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 그렇다 보니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여행 기간이나 국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작게는 수십 만원에서 크게는 수 천 만원이 필요하다. 세계 여행을 통해 지구촌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배움이 있는지, 어떤 시대적 흐름을 읽어야 하는지 등과 같은 배움 여행이면 조금은 덜 속상하겠지만 우리의 여행 문화는 배움의 여행이 아니라 먹고 마시는 여행이 대부분이라 안타깝다.

어쩌면 휴식을 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몸을 혹사하는 여행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휴가란 몸도 마음도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면서 정신 건강을 회복하고 재충전의 기회로 삼는 것이 본질이지만 오히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더욱더 피곤해진다.

무엇을 보고 배웠는지 보다는, 무엇을 보고 먹었는지가 더 관심사다. 오죽하면 먹방 여행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이는 우리나라에서 만 통용되는 용어는 아니다. 서양 사람도 우리에게 배워서인지 먹방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그곳에 가서 그것을 보았다고 하기엔 본 것의 깊이가 너무 얕다. 어쩌면 보았다고 말하기보다는 스쳤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곳의 역사나 문화는 관심 사항이 아니다. 내가 그곳을 다녀왔다는 것과 그것을 먹어보았다는 인증 사진을 찍어서 SNS를 통해 알리는 것에 열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비용을 썼지만 남는 건 사진 몇 장과 그곳을 다녀왔다는 자랑 섞인 추억담은 아닐까?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면 좋을지, 자기 삶의 목표를 완성하는데 어떻게 대입시키면 좋을지에 대한 피드백은 없다.


“어휴~ 여행은 그냥 여행으로 족한 것이지 굳이 의미를 부여하고, 적용하고, 가치를 따지고…… 그렇게 까지 피곤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물론 그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 반박하거나, 수정해 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개인이 생각하는 여행의 정의가 다를 뿐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 것은 하나의 예를 여행으로 든 것이지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



본래의 관점으로 돌아와 보자.

노후 준비의 필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차일피일, 이런저런 핑계를 통해 자기 합리화의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노년기에 남는 건 삶이 주는 고통과 지난 온 선택에 대한 후회가 전부일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삶은 비슷하다.

다만 먹고, 쓰고, 즐기고, 저축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모두 소득과 지출에 관한 것으로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하는지, 어느 정도까지 수용하는 자금계획을 집행할 것인지에 대한 개인의 견해차만 있을 뿐 옳고 그름을 논 할 수는 없는 문제다.

인간으로서 살아야 하는 시간의 길이가 다르기 때문에 그 삶의 어느 부분에 역점을 두어 소득과 지출을 관리할 것인지 선택만 남을 뿐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65세가 되면 노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이때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또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렇다면 65세에 국민 연금을 수령하는 선택 버튼은 언제 눌러야 하는 것일까?

반드시 선택 버튼을 눌러야 하는 현역기스위치를 회피한 경우라면 국민 연금을 수령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도장을 찍은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선택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내가 늙었을 때는 국민 연금이 바닥나기 때문에 제대로 받을 수 없어서”

“나는 주부로서 남편이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때문에

“국민연금으로 지출하는 보험료가 너무 아까워서”

“국가를 못 믿어서” ……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마찬가지로 in put 없는 out put도 없다.

국민 연금만 그럴까?

아니다 개인연금도 마찬가지다. 퇴직 연금도 급여 생활자가 아니라면 선택 스위치는 없다. 이 또한 급여 생활자가 아닌 길을 걷는 선택지를 선택한 결과일 것이다.

주택 연금도 마찬가지다. 주택을 맡기고 연금을 수령할 수 있을 만큼 관리하지 못하면 역시 주택 연금을 신청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운명의 갈림길에 도착했을때는 노년기 삶의 방향과 질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역 시절에 노년기 삶을 위해 미리 눌러두었던 선택 스위치에 의해서 결정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이 있는 사람은 예외다. 그때 가서 즉시 연금을 신청하거나 부동산 임대 소득을 얻거나 또 다른 돈을 끌어다 쓸 수 있는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돈이 없는 대다수의 서민들에겐 그런 선택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런 질문을 해 보고 싶다.

“혹시 저작권료로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작사, 작곡을 할 줄 아는가?”

“돈을 주고 팔 수 있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가?”

“글을 잘 써서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가?”

 “지금 소득을 만들어 주는 그 직업을 평생토록 유지할 수 있는가?”


 이런저런 이유에서 질문에 대한 답변이 궁색하거나 불 분명하다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plan B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Plan B가 가동되는 시점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시기가 결정되는 만큼 그날이 언제든 사용할 수 있으려면 사전에 준비해 두는 것이 절대적인 해결책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 말고 무엇을 잘하는가?”

“있다면 그 일은 소득을 발생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는 일인가?”


고민해야 한다.

막연한 기대도 금물이지만, 근거가 불 분명한 낙천적 생각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냉정한 시각으로 자신에게 물어라.

지금 하는 일이 오늘 까지라면 어떤 일을 통해서 그다음의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는지?


지금 선택한 재무적, 비재무적 선택 버튼은 노년기 삶의 방향과 질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 준비한 Plan B는 우리의 어깨에 자신감을 더하는 또 하나의 핵심 동력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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