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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Oct 30. 2017

#24. 알아 차림

알아주면 우쭐해서 교만해지고,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해서 토라진다

“내가 표출하는 행위적 표현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개인과 집단을 구분하지 않는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철학적 화두를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앞과 뒤를 따지는 계산의 잣대를 걷어내고 도움을 주고받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듯 개인도 조직도 마찬가지다. 타인들은 잘 모르는 자기만의 무엇이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발견하고 필요에 맞게 사용하는가?

아니면 외면하고 흘려버리는가?

있다면 그 차이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은둔자가 아닌 이상 자신이 존재하는 공적 사적 환경에서 눈에 띄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많거나 알아줌의 질적 수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알아줌>을 언급했던 글 하나를 인용할까 한다.

조선조 후기를 대표하는 학자 이덕무는 청언 소품(淸言小品))에서 알아줌을 이렇게 적었다.


남을 향한 원망과 비방은 모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데서 생겨난다.

내가 가진 것은 열인데

남들은 하나나 둘로만 보아 주니

섭섭하고 화가 난다.


나는 똑똑한데 바보 취급을 하니 기분이 나쁘다.

남이 나를 알아주니 참 기쁜 일이지만

설사 알아주지 않은들 대수이겠는가?


누가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고는

내 본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나는 묵묵히 내 길을 갈 뿐

남의 시선을 염두에 둘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옆으로 눈길을 준다.

남들의 눈치를 살핀다.

조금 알아주면 우쭐해서 교만해지고,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해서 토라져 버린다.


“네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가 있지?”

무언가 원한 것이 있는데 돌아온 결과가 그에 못 미치거나 예상치 않았던 결과로 이어질 때 그것을 결정한 상대에게 섭섭한 마음을 표하는 말이다.

섭섭함을 느낀다는 것은 심리적 간극의 차이가 심각하게 드러났음을 뜻한다. 그 차이는 오해의 싹과 방향을 증폭시킨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어되지 않는 상상의 나래가 달리기 시작하면 지나온 관계의 긍정성은 부정되고 관계적 측면에서 전면적 수정이 가해진다.

세상만사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라는 이성적 판단을 하기보다는 “내가 왜”라는 자기중심적 사고의 틀에 갇히는 예가 허다하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게 마련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손뼉 치며 만났다고 해서 손뼉 치며 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손가락질하듯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면서 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만남과 이별 사이를 수놓았던 추억의 시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우개로 지우려 한다.

포유류의 뇌(3층 뇌 중 2층 감정의 뇌) 가 흥분하는 것을 인간의 뇌(3층 이성의 뇌)로 통제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유사한 경험 값이 쌓이는 과정에서 아름답지 못하게 헤어졌던 상황의 기억이 하나 둘 이해되기 시작하면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때쯤이면 시간이 약이라는 말의 이유를 깨닫게 된다.


내가 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누군가에게 음으로 양으로 크던 작던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그것이 선하면 선한 영향력으로 악하면 악한 영향력으로 나타난다.

나의 행동은 내가 결정하지만 그 행동에 대한 주변인의 평가나 평판은 내 몫이 아니다.

주변인들의 평가는 나의 행동에 날개를 달아주기도 하고 날개를 꺾어버리기도 한다.

어떤 결과로 이어지든 그것은 나의 행동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런 결과를 불러드린 사람이 다름 아닌 “나”인 것이다.

그런 내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한 단어를 공유하면서이 글을 맺고 싶다


“알아 차림”이다.

왜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알아차린다면 포유류의 뇌가 흥분하는 일을 일정 부분 통제할 수 있다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잊지는 말자. 흥분은 잠시지만 그에 따른 주변인의 평가는 오랫동안 이어진다는것을....

“그 사람(리더 또는 구성원)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 다시 봐야 하겠구먼”

이런 평가의 눈으로 나를 평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알아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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