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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Nov 29. 2016

생애 퇴적이 시작되는 구간

그날이 오기 전에


세상만사 자연의 이치는 때가 차면 기울고, 기울면 떨어지고, 떨어지면 쌓인다. 인간의 삶도 예외는 아니다. 때가 차면 서서히 세월의 뒤안길로 물러서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특정한 어느 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하는 생애 구간을 만나게 된다. 그곳이 바로 '생애 퇴적 구간’이다.


인간에게도 퇴적 위험을 경험할 수 있는 구간이 존재한다. 그 시점은 대략 71세 이후, 즉 평균 소득 정년을 맞는 그다음 해부터다. 그때는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활동반경이 급격하게 좁아지기 시작한다. 경제활동을 하는 직업인의 자리에서 영원한 자연인으로 돌아와야 하는 때가 생애 퇴적 구간이다.


야속한 일이지만 세상은 돈으로 통한다. 

돈은 곧 힘이고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나이가 들어도 세상을 향해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더해 주는 것이 바로 돈이다


자의든 타의 든 해 오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 이동해야 하는 사회적 분리수거 위험지대(60세~70세)를벗어난다고 해도 또 하나의 위험지대인 생애 퇴적구간을 비켜가지 못하면 퇴적 인간의 삶을 살아야 한다.



종로 일대 뒷골목을 가면 노인 삶의 단면들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탑골 공원(파고다 공원)을 포함한 종묘 일대를 돌아보면 노인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일상을 접할 수 있다. 내기 장기를 두다가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있는지 소리소리 질러대며 싸우는 노인들, 어딘가를 주시하면서 미동도 하지 않고 쪼그려 않아 있는 노인들,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새치기하는 노인들, 박카스 아줌마와 무언가 밀담을 나누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왕년에 잘 나가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느 누구 하나 못 나갔던 과거를 자랑하지 않는다. 몸은 비록 늙었지만 마음만큼은 늙지 않았다고 허세 아닌 허세도 부린다. 하루 용돈으로 천 원 정도 쓸 수 있다면 파고다 공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고, 오천 원 까지 쓸 수 있다면 종각까지 활동 반경이 넓어진단다. 그런데 하루 2만 원을 쓸 수 있다면 시청까지 그 범위가 넓어진다는 웃지 못할 글을 접한 기억이 난다. 노인들의 격을 하루 사용 가능한 돈의 크기로 평가하는 것만 같아 그런지 우스개 소리로 치부하기엔 뒷맛이 씁쓸하다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간다. 그래서 ‘찰나의 시간’이라 하지 않는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신이 우리에게 내려준 최적의 준비시간은 다름 아닌 오늘이다. 오늘 해야할 일들을 대책도 없이 내일로 미루다 보면 'NO人으로 퇴적되는' 안타까운 미래를 맞을지도 모른다. 마치 야산의 이름 모를 어느 한 구석, 빛도 비켜가는 습지에서 썩어가는 낙엽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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