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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Dec 04. 2017

#42. 살아남은 것과 남겨진 것


12 결산의 달이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손익을 계산하는 달 일 뿐만 아니라 계획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잘 된 것과 그렇지 못한 것, 그리고 고쳐야 할 것을 가려내고 향후 계획을 확정 짓는 달이다.

이때 기업은 특별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사업의 방향성에 기초하여 버릴 사업과 살릴 사업을 구분한다.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절대 버릴 수 없는 사업, 확실하게 버려야 하는 사업, 그리고 버리자니 아깝고 취하자니 부담되는 계륵 같은 고민이 자극되는 사업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이 추구하는 사업은 어떤 사람과 함께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수반하는 선택을 동반한다. 때문에 사업 방향에 준하는 사업을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인재를 새로 영입하거나 사업에 적합한 사람을 추려내어 재배치한다.

또 기업에 쓰임이 다해 같이 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야 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때 남겨진 사람과 버려져야 하는 사람이 발생한다. 남겨진 사람도 자세히 살펴보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조직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조직에서 죽어야 날이 올 수밖에 없다.

그것이 비단 은퇴만의 일은 아니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언제든 죽는 날이 통보될 수 있다. 다행인지 요행인지 모르지만 아직 죽어야 하는 날이 통보되지 않았다면 한 번쯤 심도 있는 자가진단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남겨진 사람일까?

혹시 계륵 같은 사람은 아닐까?

조직의 배려로 목숨이 연명되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는 아닐까?


싫든 좋든 연말이 되면 자기 결산을 해야 한다. 실력으로 살아남았다고 좋아할 것도, 남겨졌다고 안도의 한숨을 쉴 것도 아니다. 세상의 경쟁자가 내부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항시 접하는 내부의 경쟁력만 바라보고 안위한다면 적 요인에 의해 내가 속한 집단이 위기에 봉착하는 것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곧 전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총과 칼은 들지 않았지만 또 다른 무기 중에 하나인 돈과 아이디어로, 상대를 누르고 승자가 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갖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은 이기는 방법을 찾는 것에 몰두하게 만든다.

송병락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그의 책 <전략의 신>에서 나무계단과 부처 이야기를 적었다. 사람들이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서 나무부처에게 계속 절을 한다. 하루는 나무 계단이 나무부처에게 불평을 했다.

“우리는 출신이 다 같은 나무인데, 어째서 사람들이 나는 계속 밟고 올라가고 당신에게는 절을 합니까? 대접의 차이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나무부처가 대답했다.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칼을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알기나 합니까? 당신은 칼로 모서리 네 군데밖에 맞지 않았잖소?”


그냥 얻어진 것은 없다. 

그러므로 남겨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냥 남겨진 것이 아니다. 분명히 쓰임이 남아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칼을 맞은 사람은 더 나은 대접을 받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일개 범부의 대접을 받는 것이 이치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싸움에 참가하다 보면 적의 화살을 맞기도 하고 적의 칼에 깊은 상처를 입고 생사를 넘나드는 일이 수도 없이 벌어진다. 그와 같은 경험을 일부러 자청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자기 목숨을 담보 삼아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사투 끝에 얻은 개선의 감투는 소홀히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장수의 몸엔 흉이 많다. 하지만 신참 병졸의 몸을 보라. 어느 곳 하나 칼에 베인 흔적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유능한 장수의 지휘를 외면한 전투에 참가하면 허망하게 목숨을 잃어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그 조직에서 아직 당신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그 쓰임을 더욱더 갈고닦지 않는다면 당신의 칼은 무뎌질 것이고 전쟁터에서 적군 하나도 베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람이나, 아직은 쓸모가 남아 있어 남겨진  사람이나 크게 보면 살아남은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일도 남겨질 것으로 생각하면 대단한 착각이다.

당신을 끌어내리지 않으면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경쟁자의 칼을 받아 낼 수 있어야 내일이 담보될수 있다. 약육강식의 세계는 하루하루가 생과 사를 넘나드는 세렝게티 초원의 동물들처럼 한시도 넋을 놓을 수 없는 전쟁터와 같기 때문이다.

다음이미지

오늘도 당신이 살아남아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당신의 능력이 인정되었다는 뜻이다.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것은 흔히 하는 말처럼 칼을 야무지게 갈아 놓는 일이다.


기업도, 개인도 자신들의 무기를 갈아 놓지 않으면 한 순간에 훅 가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오늘도 뜨거운 숯불 위에서 자신을 달구기도 하고, 달궈진 자신을 찬 물에 담근 후 다시 두들기는 담금질의 이치를 삶의 전쟁터에서 실현하다 보면 늘 살아 있을 수밖에 없는 조건의 종신 계급장을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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