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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Dec 01. 2017

#41. 경험의 유통기간(2)

성취의 경험에 숨지 말자

“성취의 경험에 숨지 마라”


사람은 누구나 화려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있다. 젊은 날의 싱그러움도, 꽃 중성공담도,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저마다 주어진 생에서 화려한 날개 짓을 뽐낼 수 있는 때가 있다. 하지만 화려했던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왕년의 향수에 젖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숨어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자신의 정점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오늘에 변한 모습을 노출시키는 것이 내심 받아 드려지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과 성취가 미래를 위한 동력이 아니라 특별한 걸림돌이 된다고 할까?

과거의 경험은 익숙한 것이지만 오늘의 생소함은 과거의 경험으로 대체할 수 없는 새로움이다. 문제는 변해버린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개선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경험 속에 안주할 것인가에 따라 미래는 달라진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회의가 많은데 회의 석상에서 간혹 보이는 현상 중에는 과거의 경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많은 경험을 가진 선임들이나 고 직급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그 대상이다.

“그거 내가 해 봤는데 안돼”

“괜한 헛수고하지 마, 위에서 안 받아들여, 내가 한두 번 시도한 게 아니거든”


시간이 흐르면 환경도 바뀌고 사회적 인식도 바뀌게 마련인데 자신만 과거의 경험을 붙들고 내일을 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일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려면 모른다고 시인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채워야 하지만 유사한 경험 값이 많거나 지난날의 성취감에 취한 사람들은 자신의 빈 속이 드러나는 것을 꺼린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있어빌리티>한 이미지로 기억되길 바라는 인간의 욕심이 판단을 흐리게 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때 약점을 잡히기 쉽다고 말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할 때, 달리기를 잘 하는 사람은 달리기 할 때, 싸움을 잘 하는 사람은 싸울 때 약점을 잡힌다”(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 / 자오위핑)

지난날의 주먹황제 김두환이 살아 온들 그 주먹이 옛날의 파괴력을 대신할 순 없다. 그의 주먹이 화려할 수 있는 시대적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년에>를 외치면서 호기를 부리는 사람들이 우리들 주변에는 너무 많다.

“내가 누군지 알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굳이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하는 말일 것이다.

물론 아직도 그 위력이 살아 있어서 어떤 힘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호기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크거나 강하면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성취의 경험은 무섭다.

화려한 기억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결단을 요하기 때문이다.

임원으로 퇴직한 사람이 있다.

퇴직 후 자신이 근무했던 회사를 방문했는데, 경비원이 가로막는다

“자네가 몰라서 그렇지 나 이 회사 임원이었어, 그러니까 들어가도 되지?”

이렇게 말하는 골 빈 전직 임원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비가 쉽게 길을 열어준다면 경비도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의 임원 직함이 지금도 통용되는 힘은 아니다. 사람이 바뀌었고, 환경이 바뀐 것을 과거의 직함으로 뒤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야 한다.

“누구를 만나러 왔는데 연락 좀 부탁할게요. 전에 이곳에서 같이 근무한 동료거든요?”

“약속은 하셨나요?”

“물론입니다”

“누구시라고 전할 까요?”

“OO입니다”

경비는 그렇게 다가서는 사람을 쌀쌀맞게 대하지도 않겠지만 거부할 명분도 없다.

그런데도 막는다면 이번에는 경비가 문제 있거나, 회사의 방침이 바뀐 것일 테다.


벼가 익으면 머리를 숙인다는 말은 겸손을 뜻하는 것이지 비굴하거나 약해지라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지휘가 높았거나 성취감의 크기가 컸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 머리를 뻣뻣하게 세우고 있으면 주변의 존경을 얻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숙이는 사람을 대하다 보면 왠지 모를 숙연함과 존경심이 싹트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성취의 경험을 드러내지 않고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그들이 바로 고수다.


<있어빌리티>에 숨거나 <성취의 경험>이라는 커튼을 치고 있는 사람들을 현재의 잣대로 측정해 보면 그 깊이가 매우 얕은 것을 알 수 있다.

화려한 기억을 잃고 싶지 않은 욕망이 성취의 경험 뒤숨어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와야 한다. 지난날의 화려한 기억을 박차고 나오는 것도 용기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성경 말씀처럼 새 시대는 새로운 생각과 경험으로 채워나가자.

지난 시절의 경험들은 개인의 경험 박물관에 넣어두고 필요한 때 참고하는 보약으로 삼자.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과거의 토대 위에 오늘이 있고 오늘을 지나야 내일이 오듯, 어제의 경험을 오늘의 잣대로 들여다 보고, 그 차이를 메워 간다면 내일로 들어가는 기회의 문도 충분히 통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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