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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he ship

51화. '치아 호소문'

저 좀 도와주세요

by 이종범

저는 음식물을 잘게 부수는 역할을 하는 치아입니다. 오늘은 응어리진 마음을 달래고 싶어 호소문을 썼습니다.


주인님은 초콜릿과 과자를 정말 좋아합니다.

늘 곁에 두고 먹으니까요. 특히 장거리 운전을 할 땐 과자를 씹으며 졸음을 쫓습니다.


담배도 하루 한 갑은 피웁니다.

주인님은 담배를 질끈 깨무는 습관이 있어요

거르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주인님은 40대에 들어서면서 식습관도 변했습니다. 싱거운 음식을 씹을 땐 부담이 없었는데 요즘은 씹는 음식물이 부담스럽습니다. 짜고, 맵고, 달고... 자극적인 음식들이 너무 많이 들어오거든요.


치아 관리도 불만입니다.

참으려 했지만 이젠 안 되겠습니다

어금니가 빠진 지 벌써 2년이 지났는데 그대로 방치하고 있거든요

임플란트 비용이 너무 비싸다면서 말이죠.

덕분에 반대쪽 어금니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습니다. 어금니가 빠진 쪽으로 음식물을 보내주지 않아서 씹을 일도 많이 줄었습니다. 음식물이 끼는 게 싫은 모양입니다


다른 주인님을 모시는 치아들은

아말감, 글레스 아이노머, 인레이, 온레이, 레진, 브리지, 임플란트... 치아치료를 잘 받고 있어서 그런지 주인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고 자랑질을 하더군요.


제 주인님은 저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요?

사랑한다면 이렇게 혹사시킬 수 있을까요?

할 수만 있다면 제가 모시는 주인님을꾸고 싶습니다.


누가 제가 겪는 고통을 좀 알려 주세요?

양치질 만으로는 저를 보호하기 어렵다고요.

살짝 깨진 치아 두 개, 전체적으로 잇몸도 안 좋아서 흔들리는 치아도 서너 개 되는데 언제쯤 치료해 주실지...

치아 건강을 너무 얕보는 건 아닌지...

저도 알아요.

돈이 문제라는 걸.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죠.

한 번에 목돈 들어가는 게 부담이라면 치아보험을 가입해 두면 필요할 때 보험금으로 치료받으면 되잖아요.

다른 주인님은 다 그렇게 하는데 굳이 외면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치아보험을 모르는 걸까요?

저(치아)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합니다.

저를 일개 소모품처럼 여기는 것 같아요.

설마 영구치가 빠지면 또 나올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오죽하면 치아 건강이 오복 중에 하나라는 말이 있을까요?

이 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섭섭해서 안 되겠어요

"이가 자식보다 낫다"는 속담을 알려주고 싶어요. 저를 너무 홀대하는 것 같아서요.


저 좀(치아) 도와주세요.

저도 다른 주인님의 치아들처럼 보호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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