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대화법 1 / 이위하여(以爲何如)
성군으로 추앙받는 소통의 왕, 세종은 회의를 주제 할 때면 “경들은 어찌 생각하시오?”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세종실록)
집현전 학사들은 물론이고 조정 중신들과 백성들의 생각을 묻는 지혜의 군주 세종은 코치의 왕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부여된 절대권력을 남용하기보다는 국가 통치의 기본으로 군신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했던 세종은 연민의 마음으로 백성을 바라보고 그들의 아픔을 보듬고 개선하려 고심했던 최고의 왕이다.
물음은 듣고 싶은 의도가 깔려 있는 질문이다.
세종은 듣는 수준을 넘어 잘 듣고 정확하게 이해하려 노력한 왕이었다. 왕의 권력을 생각하면 오히려 신하가 더 잘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왕의 말은 절대적이어서 이를 듣고 시행하는 신하의 입장으로 보면 말이다. 자칫 잘 못 이해하고 정책을 시행한다면 왕권에 누를 끼친 죄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신하는 잘 듣고 제대로 이해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세종은 신하의 소리에 더 많은 귀를 빌려주고 있다. 끊임없이 묻고 확인하기를 반복하는 끈기의 왕이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은 무를 자르듯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절대 권력이라면 양자택일을 요구할 수도 있다.
소통의 왕, 코치의 왕 세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하든 백성이든(설문조사) 그들에게 의견을 묻고 그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려 노심초사의 밤을 지새웠던 세종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어른의 표본은 아닐지......
나라에 큰 어른이 없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정치권력의 힘을 무서워하지 않고 때로는 따끔하게 충고하고 때로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시대의 어른이 없기에 나오는 말일 테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소통의 리더, 코치의 리더가 필요하지만 군림하는 리더가 넘쳐난다.
리더는 부탁이라고 말하지만 조직 구성원은 강요로 들으니 말이다. 이는 세종 임금이 보여준 소통의 기본자세를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리더나 조직 구성원이나 직급을 떼어내면 똑같은 사람이다. 서로의 입장을 직급이라는 기준점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자세가 기저에 없다면 상대의 말을 왜곡되게 들을 수 있다.
의견이 조율되지 않을 때 리더의 선택은 그래서 할래? 말래?로 이어질 수 있다. 리더의 특성상 성과를 도출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실행을 위한 결단쯤으로 이해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조직 구성원이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리더가 강요의 칼을 빼 들었다고 보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연민의 정, 측은지심이 없는 상태에서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들어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선의로 묻고 선의로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종 대왕이 통치한 그때와 지금은 분명하게 다르다.
왕(권력자 or 리더)과 신하(조정 대신 or 부서 리더), 왕과 백성(국민 or 조직 구성원) 간 서로에 대해 선의로 묻고 선의로 듣는 마음이 더 많아지는 세상은 요원한 꿈에 지나지 않을까?
말했다고 하면서 잘 말하려는 자세가 없고, 듣는다고 말하면서 잘 들으려 하지 않는 이기적 사고는 사람 사는 세상에 냄새나는 가십거리만 양산되는 꼴이다.
세종대왕의 신하들은 행복하지 않았을까?
잘 들으려 노력했던 군주가 자신들의 리더였으니까
세종대왕이 신하들은 더 창의적이지 않았을까?
코치의 왕이 자신들의 리더였으니 말이다.
그림 출처 : 다음 이미지 / 파이낸셜 뉴스 / 역사 속 통계의 영웅을 찾아서 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