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자기 성찰을 위한 질문

이 뭐꼬?

by 이종범

'이 뭐꼬?'

가야 산 호랑이 성철 큰 스님의 질문 구다.

얕은 생각으로 스님의 질문을 받아내긴 어렵지만 지금 앞에 나타난 현상을 대하는 자기 인식의 의문 질문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 하나를 꺼내본다.

그 현상이 세상의 기준에 부합되든 그렇지 않든, 나타난 현상 그 자체를 편견 없는 눈으로 대하는 자기 성찰 진입 질문으로 이해한다면 스님의 질문 구를 곡해하는 것일까?


인간의 삶은 생존을 위한 투쟁적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자기 보호 본능에 충실하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생존적 진화를 거친 것에 대한 묵시적 동의가 있다. 물론 종교적 관점의 마찰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자기 보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투쟁은 크고 작은 마찰이나 전쟁을 수반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를 외면하고 살 수는 없다. 관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보다 나은 무엇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표면화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난다. 이와 같은 대립은 갈등의 미로 속을 걷는 것 같은 심리적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간 내면의 욕구를 파악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을 바라볼 때도 선입견이나 편견의 안경을 쓴 채 내적 욕구에 다가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 표출된 표피적 언행이 어떤 욕구에 기인한 것인지 모르는 상태에 소모쟁만 늘어날 뿐이다. 그러므로 내 안의 본질적 욕구와 연결될 수 있는 질문에 집중하고 답해야 한다.

[A강사] 제가 이번에 K과정에 들어가야 하는데 강사님 강의 파일 좀 공유해 주시면 안 될까요? 참고할 것이 있어서요?

[B강사] 제 파일요?

[A강사] 네

[B강사]...... 싫은데요?

[A강사] 그러지 말고 좀 보게 해 주시죠?

[B강사] 그래도 싫어요

[A강사] 제가 시간이 없어서 동료 입장에서 도움을 청하는 건데 너무 하는 것 아닌가요?

[B강사] 강사님은 언제나 그런 식이에요. 직접 만드시면 되잖아요?

[A강사]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다고

[B강사]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요? 다른 분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요?

A와 B는 동료 입장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흥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를 탓하며 흥분하기 전에 자기 내면 욕구를 파악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자가 질문을 통해 숨겨진 내면 욕구에 근접해보자.

[B 강사의 내면 욕구 발견 질문 예시]

Q1>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 거지?”

Q2> “화를 내고 있는 진짜 원인은 그 사람이 내 교안을 날로 가지려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일까?

Q3> “교안이 넘어가면 나의 강의가 힘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Q4> “교안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던 것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은 것일까?”

[A 강사의 내면 욕구 발견 질문 예시]

Q1> “내가 왜 흥분하고 있는 걸까?”

Q2> “동료 입장에서 요청한 것인데 그것이 잘못된 것인가?”

Q3> “나는 왜 그 사람의 교안이 필요한 것인가?”

Q4> “그 교안이 없으면 강의를 망치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Q5> “굳이 새로 만들기보다는 만든 사람 교안을 활용하자는 이기심은 아닐까?

Q6> “솔직히 잘 만들 자신이 없어서 불안한 것은 아닐까?

Q7> “내가 게을러서 새로 만드는 것을 싫어하는 것일까?

A나 B 모두 표출된 현상을 지배하는 이면의 숨겨진 욕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내면의 나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기 성찰을 통해 숨겨진 욕구가 발견되었다면 상대에게 포장하지 않고(스스로 타협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갈등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사람은 어느 쪽이든 자기들이 비판당하거나, 진단, 분석, 비교된다고 생각되면, 그 상황에서 좋은 쪽으로 에너지를 사용하기보다는 자기 방어와 맞비난을 하는 쪽으로 변질될 공산이 커진다. 그러므로 갈등 상황이 이어질 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욕구에 집중하는 질문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문제 해결적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성철 스님의 질문 “이 뭐꼬”는 갈등과 번민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더없이 중요한 문제 해결의 화두는 아닐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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