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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Jan 02. 2017

#12. 경험 박물관

오늘의 젊음도 미래의 어느 날엔 늙음이 된다

“길거리의 노인을 보면 화가 난다”,
“탈퇴에 표를 던진 부모가 창피하다”
“나는 영국인이 아니라 EU인 이다”

EU라고 하는 울타리에서 모든 것을 누린 기성세대 브렉시트 탈퇴로 인해 자신들의 미래를 빼앗아 갔다고 분노하는 영국 젊은이들의 외침이다.

“정부는 처음에 노인들을 지지했다. 입에 발린 소리일지언정 노인 공경의 미덕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서 노인들을 여론의 심판에 넘겨 버렸다. 한 사회학자가 텔레비전 저녁 뉴스에 나와서 사회보장의 적자는 대부분 70세 이상의 노인들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자 노인 배척 운동 전선에 생긴 그 돌파구를 이용하여 정치인들이 공격에 가세하였다. 그들은 의사들이 너무 쉽게 약을 처방한다고 비난했다. 의사들이 공익은 뒷전으로 돌리고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마구잡이로 노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황혼의 반란 <나무 / 베르나르 베르배르 著>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서울 도시철도공사(이하 서울도철)에따르면 노인인구 증가 등으로 인해 무임승차 이용은 매년 평균 13.1%씩 증가하고 있다. 서울메트로의 지난해까지 누적적자는 6조 7000억 원을 넘어섰다. 서울도철의 누적 적자 규모도 5조 7000억 원에 달한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지하철 광고비용 감소, 고령화로 인한 무임승차, 부정승차 등이 적자의 주원인이다. 서울시 교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노인·유공자·장애인의 무임수송 서비스로 인한 운영손실은 당기순손실의 85%에 해당하는 3154억 원이다. 지난해 200원의 요금 인상이 있었지만 적자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이에 서울도철은 근본적인 문제인 노인 무임승차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고령화 추세라면 2018년에는 전체 손실액의 절반이 무임승차액일 것으로 분석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울 지하철 '노인'무임승차기준 강화, 혜택도 반값 부담으로, 기사 내용이다.(메트로)


고령화로 인한 노년 세대 쏠림 현상사회보장이라이름의 분배정책에서도 쉽지 않은 난제를 암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표를 의 정치인들의 복지 공약과 잘못 맞물리게 되면 사회적 갈등의 수준을 넘어 세대 간 폭발을 자극할 수도 있다.


황혼의 반란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기로 하자

대통령은 신년 담화를 통해 <노인들을 불사(不死)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담화 이후 70세 이상의 노인들에 대해서 약값과 치료비의 지급을 제한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75세부터는 소염제에 대해, 80 세부터는 치과 치료에 대해, 85세부터는 위장 치료에 대해, 90 세부터는 진통제에 대해 환급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또 100세 이상의 노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무료 의료 서비스를 일체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정치인은 물론이고 광고 제작자들까지 나서서 반노(反老) 캠페인을 벌인다. 심지어 개 먹이인 사료 광고에서는 한 노인과 개가 등장하는데 노인이 개밥 사발에 담긴 먹이를 훔치려고 하자, 개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댄다. 그러면서 <플리 키, 바로 당신의 할아버지가 꿈꾸는 먹이입니다>라는 문구가 나타난다. 그즈음에 보건복지부에는 이런 말이 들어간 포스터가 나붙었다.
<65세는 괜찮아요. 70세요? 손해의 시작이죠!> -이하 생략-

주인공인 프레드는 저항 운동을 함께하는 동료 노인(콩트랑)의 장례식에서 이런 말을 전한다.

<노인 하나가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입니다>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이라는 자산도 나이가 면서 은퇴와 함께 내 던져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노인들이 많아지면서 여기저기 노 폄하의 목소리들이 지켜야 할 선을 넘긴 지 오래다(물론 사회적 지탄을 받아야 할 노인도 많다). 

유명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유명 작가도, 심지어 인터넷 덧 글에서 표현되는 노년 독설은 표현의 정도가 너무 심해 눈을 씻고 다시 보아야 할 만큼 지나친 표현들이 난무한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무턱대고 폄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본을 보여야 하는 사회 지도층 노인들(?)의 잘못된 행동이 공론화(당사자의 잘못을 당사자의 연령층으로 확대시켜 단정 짓는)되면서 일반 노인들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간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인 경시 풍조가 약하다고 단정 짓기엔 막말의 정도가 너무 심한 것은 사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게 되고 싫든 좋든 65세가 되면 노인이다. 수원대학교 이주향 교수는 “꽃이 피는 것이 본성이라면, 지는 것도 본성이다. 늙음의 미학을 모르는 사회가 어떻게 지혜를 알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신체적으로는 할 말이 없는 나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만큼은 젊은이의 식견으로는 견줄 수 없는 남다름이 깃들여진 노인이다.

그들의 지혜를 올바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이끄는 리더들의 몫이다. 또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배워야 할 지혜의 보고가 가득담긴 경험 박물의 역할을 감당할수 있는 노인으로 남아야한다. 제발 노인들의 경험과 통찰력을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깍아내리고, 대책없이 질타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젊음도 미래의 어느 날엔 늙음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믿는다면 말이다.

젊음에서 뱉어낸 독설도 시간이 흐르면 늙음의 어느 시점에서 부메랑이 되어 날아들지 모른다. 

마치 CDPD <휴식. 평화. 안락센터>의 젊은이가 프레드를 죽이기 위해 주사를 놓는 과정에서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 게다」라는 독설을 들어야 했던 젊은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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