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알아차릴 수 있어서

"화"

by 이종범

전화기로 들려오는 상대방의 말투에서 내 속의 또 다른 내가 튀어나오려 한다.

'화'다.

긴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뱉어내길 서너 차례,

화를 잠재우기 위한 나의 처방전을 가동해야 했다.

하지만 쉽사리 가라앉질 않는다.

애써 진정시킨 다음, 나의 내면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화가 난 것일까?"


오늘은 곤지암 연수원에 오전 강의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런데 어제 사소한 것을 원인으로 아들과 말다툼을 했는데 그것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아들은 여자 친구와 1박 2일간 여행을 계획했고 어제가 떠나는 날인데 말다툼이 벌어졌던 것이다.


오늘은 아들의 생일이다.

좋지 않은 마음으로 여행 중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먼저 전화를 할까",

"아니면 돌아오면 화해를 청할까"

생각의 꼬리가 물리는 상황에서 습관처럼 출근길을 서둘렀다.


아침 근무가 시작됐다.

9시쯤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메신저가 켜져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오늘 강의 신 거 모르세요?"

순간 아차 싶었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 시간 혼란했던 마음을 끊어내지 못한 여파가 강의 시간 펑크 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강의 예정시간은 10시. 바로 출발해도 11시 언저리에 도착할 판이다.

일은 벌어졌고, 수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가는 순간 담당자의 전화 목소리가 들려온다.

"미리 말씀을 드렸는데... 왜 거기 계시는 건데요...... 미치겠네 "

화를 억누르며 따지는 말투로 질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간 욱하는 마음이 올라오면서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알아요, 미안해요. 빨리 갈게요"

담당자도 당황했는지 빨리빨리 출발하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결론은 담당자가 기지를 발휘 전후 순서를 바꾸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됐고, 무리 없이 일정을 마칠 수 있게 조치가 취해졌다.


생각해 보면 내가 화를 내야 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문제를 발생시킨 원인 제공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담당자는 하등 잘못한 것이 없다. 다만 담당자의 전화 어투 속에서 화가 섞인 막말을 한다고 인식한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화를 부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정리해 보자.

담당자는 내게 잘 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의 말투가 다소 흥분되긴 했지만, 그것은 업무 담당자로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분명 담당자를 당황스럽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므로 내 안에서 끌어 오른 '화'는 타당성이 없는 화다

괜스레 스스로 자존심이 건드려졌다고 인식한 까닭이다.


다행이다. 화의 원인을 알아챌 수 있어서......

이제 두 사람에게 사과할 일만 남았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들과 강의를 진행하는 담당자다

따지고 보면 두 사람도 나로 인해 '화'가 났을 텐데, 그들의 화는 헤아리지 못하고 내 안의 '화'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매함이 부끄럽다.

아들에겐 문자로, 진행 담당자에겐 구두로 미안함을 표했다.

상황을 마치고 나로 인해 엉겹결에 강의 순서가 바뀐 강사님을 만났다. 어찌나 미안하든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강사님,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저 때문에 일이 꼬였네요"

"어휴,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개념치 마세요"


고마웠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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