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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Sep 13. 2018

#73. 떠나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

산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뻣뻣하다.

뒤뜰 베란다 데크

화분에서 잘 키우던 나무 하나가 죽었다. 4~5년 전에도 비실거린 적이 있어 겨우 살린 것인데....

뻗어나간 가지가 예쁘지 않아서 다시 모양 잡을 욕심에 가지를 친 것이 문제였다. 아차 싶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상태라 걱정했었는데 그 걱정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죽은 나무의 표면은 노인의 피부 주름처럼 쭈군쭈글해진다. 나무도 사랑과 애정으로 크는 건데 자연의 바람과 햇볕이 살려줄 거라 믿고 방치한 결과다.

죽은 탓일까, 살짝만 힘을 주어도 곁가지가 맥없이 부러진다. 약간의 수분이 남아있었어도 그리 쉽게 부러지지 않았을 텐데, 무늬만 나무였던 셈이다. 무관심이 불러드린 참사(?)라면 참사다. 하나의 생명을 죽게 했으니 말이다.

[노자 76장]
"사람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음을 당하게 되면 굳고 강해진다. 풀과 나무도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게 되면 마르고 굳어진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가 강하게 되면 멸망하고 나무가 강해지면 꺾이게 된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자리하게 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위에 자리를 잡는다." [출전] 三略

"산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굳어져서 뻣뻣하다"

잎맥(수분과 양분의 통로)으로 양분이 공급되지 못하면 나무는 생존할 수 없다. 한 여름 나뭇잎에 물이 가득 차면 윤기가 자르르한 초록의 기품을 뽐낼 수 있지만, 날이 추워지면서 떨켜에 의해 줄기와 잎의 경계가 차단되면, 수분과 양분이 오고 갈 수 없기 때문에, 나뭇잎은 마르고 비틀어져 볼품없는 낙엽신세를 면치 못한디.

부드러워지려면 통通해야 하고, 통하면 살 수있다. 하지만 죽음은 뻣뻣하다, 통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를까?

불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강하고 뻣뻣하다. 사고의 흐름이 일방이라 양분의 흐름이 막히듯 유연함이 들어설 틈이 없다. 그런 상황을 눈치챈 주변 사람들은 불통의 사람을 소통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말해야 듣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판단의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은 잘 말했는데 상대방이 잘 듣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통하지 않는 것은 일방의 문제가 아니라 쌍방의 문제다. 통하지 않는 것은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의 책임이 더 크다. 왜냐하면 물어아 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싶은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이 잘 말해주지 않으면 말속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부하직원은 상사의 말을 외면할 만큼의 여유가 없다. 때문에 태생적으로 잘 들으려 한다. 문제는 개인별 이해도가 달라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는 있다. 문제는 이때 발생한다.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다시 물어야 하는데,  상대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고 뻣뻣해서 다시 묻는 것을 꺼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사람도 기업도 죽일 수 있는 잠재적 위험으로 남게된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이긴다는 뜻으로 쓰이는 고사성어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떠나는 소리, 마음이 떠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죽는것이다. 서서히  나뭇가지의 잎이 마르듯 조금씩 들키지 않게 멀어져가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어느 순간 광야에 홀로 버려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들어야 한다.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의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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