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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Dec 07. 2018

#51. 세대 간 충돌을 막을 수 있을까?

이분법적 사고에 함몰된 이기적 사고의 시대

노인 인구 증가와 젊은이들의 감소!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의 변화는 수많은 난제를 양산하고 있다. 나이 듦이란 누군가의 돌 봄을 받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영역으로 들어감을 한다. 하지만 돌봄을 위한 비용을 부담하는 부분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선진국일수록 노인 복지에 투입하는 비용 부담으로 인해 젊은 층과 노년층의 충돌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해가는 양상을 띤다.

일례로 미국의 젊은이들이 노인 복지로 인한 세금이 무거워짐에 따라 양로원에 돌을 던진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브렉시트 문제로 시끄러운 영국도 마찬가지다.

“길거리의 노인을 보면 화가 난다”

“탈퇴에 표를 던진 부모가 창피하다”

“나는 영국인이 아니라 EU인 이다”  

EU라고 하는 울타리에서 호의호식하며 모든 것을 누린 기성세대가 브렉시트 탈퇴로 인해 자신들의 미래를 빼앗아 갔다고 분노하는 영국 젊은이들의 외침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안심할 수 있을까?

늘어나는 노년 인구로 인해 당장 국민연금 개혁이 도마 위에 올라있지만 뚜렷한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해답은 나와 있지만 실행 방법엔 이견이 일치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론적 해결책과 국민적 정서, 특히 젊은 층의 반발 등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뚜렷한 시각차를 해소할 수 있는 묘약이 없기 때문에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소신 없는 눈치 작전만 난무하는 꼴이다. 그렇게 또 다음 정권으로, 그다음 정권으로 바통을 넘기는 무책임의 정치가 반복될 조짐이 예측된다.

걱정되는 것이 있다. 국민연금 잔고가 줄어드는 정도가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하면 젊은이와 노인 간의 불가피한 충돌을 막을 수 있을까?

정부는 청년 일자리,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노력하지만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다. 노인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구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일정 부분 경제적 생산성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환경 조성은 정부의 몫이다. 그 부분에서 묘안이 없는 것이다.

청년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문제가 만만치 않다.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의 아픔을 덜고자 사업주의 반발을 무릎 쓰고라도 최저 시급을 인상하지만 이 또한 해결책이 아니다. 최저 시급이 올라가는 만큼 사업주 폐업이 줄을 잇는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이상한 현상들이 이 나라를 강타하고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 유식하고 박식하다는 경제학자들을 총동원해도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청년도 노인도 구제하는 획기적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일하는 시간은 나눠 쓰고, 급여는 적게 받는 상생적 공유가 그것이다. 내가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이기적 사고에 매몰되는 순간 해답은 없다. 두 가지, 세 가지 직업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 험한 일을 마다하며 쉬운 일, 깨끗하고 힘들지 않은 일, 있어 보이는 일만 바라보는 구조를 깨지 않는 한 젊은이의 내일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일의 미래'를 지은 린드 그래튼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까진 80년을 살고 60세까지 일을 했다면, 앞으로는 100년을 살고 80년간 일을 해야 합니다. 80년 노동시대엔 계속 학습해서 자기 발전을 하고, 재교육을 받고, 자기 자신에게 재투자하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평생 직업이 필요한 이유를 냉철하게 갈파한 말이다. 린드 그래튼의 말처럼 계속 학습을 통해 자기 발전을 꾀하려면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자기 투자가 이어질 때 가능해진다.

필자가 생각하는 자기 투자란 비단 재무적 요소만은 아니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시간 투자>, 목표와 연관성이 있는 경험을 키우기 위한 <노력 투자>, 그리고 목표로 향하는 과정에서 난관을 극복하는 <자기 관리 시스템의 정립>, 마지막으로 인생 선배의 입장에서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한 <내려놓음의 미덕> 등과 같은 요소가 바로 그것이다.

상생이란 더 갖기 위한 마음이 아니라 나누기 위한 자세에서 시작되는 대 화합의 공식이다.

내가 더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함몰되는 이기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관계에서 오는 크고 작은 분쟁은 사라지지 않게 되고 끝내는 세대 간, 영역 간 충돌로 이어질 것이다.

일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진 시대, 복지 혜택의 눈높이는 커지는데 그 비용을 부담하는 젊은이가 줄고 있는 시대, 노사 간의 자기중심적 해법을 고집하는 시대,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지만 묘약을 처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자신들의 기득권만 챙기는 무개념 국회의원이 즐비한 나라.

상생의 묘수를 찾지 못하면 미래의 주인공인 젊은이도, 그들의 지지와 도움이 필요한 노인도 이어가는 열차가 아니라, 마주 보고 달려가열차에 탑승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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