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듣고", "웃고"
부드러운 어투로 질문을 건넨다. 뜬금없는 질문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추가 질문을 던진다.
“어때요, 계획한 대로 잘 되는 것 같아요?”
종종 후배 연구원들에게 묻는 질문이다. 때론 이런 질문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서로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뭔가 도울 수 있는 틈이 보이고 그 틈을 해결하기 위한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나이 든 상사나 선배의 얼굴은 하나같이 굳어 있다. 자기만의 성을 짓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모양새다. 나이 들수록 직급이 올라 갈수록 뚜렷하게 드러나는 공통점이 있다.
"묻고", "듣고", "웃는" 일이 줄어든다. 꼰대라는 말을 싫어하면서 스스로 꼰대가 되어간다. 마치 자신의 경험과 판단이 정답인양 강요한다. 남의 잘못은 지적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렇게 습관처럼 굳어버린 자신을 망각하고 있다면 누가 뭐라 해도 꼰대다.
멋지게 나이 드는 방법은 없을까?
① 먼저 다가서자
업무적 관심사보다 개인적 관심사를 물어라. 동료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 때문에 가족 못지않은 특수 관계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종일 필요한 것만 줄을 대고(업무적인 나), 나머지는(개인적인 나)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딱딱함을 벗어나자.
② 단추는 한 두 개쯤 풀어놓고 살자
빈틈을 보여주는 일이 무슨 특급 비밀을 들키는 것도 아닌데, 꽁꽁 걸어 잠그고 접근 불가를 선언하듯 행동하면서 동료들이 다가오길 원한다면, 이보다 더한 이기적 나이 듦은 없다. 상대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먼저 열어 놓고 언제든 들어올 수 있도록 곁을 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
③ 내려놓고 배우자
나이 들수록 체념의 노예로 전락하는 예가 많다. 알았던 것인데 시간이 지나서 모를 수 있다. 그럼 잊어버렸다고 하거나 모른다고 하면 될 걸 그놈의 체면이 뭔지 얼렁뚱땅 본질을 피해 가려한다. 시간이 가면 다 알게 될 것인데 체면이 뭐라고, 정면 돌파하지 않는다면 멋지게 나이 든다고 할 수 있을까? 배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배움 앞에 그 어떤 걸림돌도 만들지 말자. 설령 그것이 체면을 깎는 일이라도 말이다.
④ 좀 웃고 살자
사실 필자도 웃음이 부족하다. 강의를 할 때 얼굴에 묻어나는 이미지는 “그것이 알고 싶다” 버전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설교자가 되었으면 대단했을 거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거꾸로 보면 꽉 조여진 나사처럼 빈틈이 보이지 않는 완벽 추구 형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게 웃는 습관이 필요하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왜 그렇게 웃음을 아끼는지 모르겠다. 배우 서민정처럼 맑고 예쁜 웃음은 아니어도, 한 번쯤 최불암 선생님처럼 호탕한 "푸하" 웃음은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나에게 맞는 웃음이 무엇인지 탐색할 필요가 느껴진다.
⑤ 제발 칭찬 좀 아끼지 말자
상대방에게 잘했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사람은 칭찬을 먹고 산다는데 칭찬한다고 돈 나가는 것도 아니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인색해야 하는지...
소소한 것이라도 잘했으면 잘했다고 말하면서 나이를 먹어야 곁에 있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