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낀 때를 벗겨내는 자정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인생을 원한다. 무병장수하면서 자식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을 만큼 재산도 있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하면서 나이 든다면 잘 늙고 있는 것일까?
개인마다 잘 늙음의 정의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 돈, 시간적 여유를 뒤로한 채 잘 늙음의 정의를 세운다면, 현실과 동 떨어진 이상적 결론으로 치부될지 모른다.
지인 중 한 분이 돌아가셔서 용인을 다녀왔다. 사망원인은 자살이다. 쉰셋, 미혼 남으로 89세 노부를 모시며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런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일상의 틈을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한 망자의 형제들은 89세 노부에게 자살했다고 말할 수 없어 갑자기 뇌졸중이 오면서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했단다.
장례식장에 가보니 부모를 앞세운 죽음 때문인지 망자의 부모와 그 형제들은 참석하지 않았고, 망자의 형제와 사촌들이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필자가 전해 들은 망자의 젊은 시절은 꽤 활동적이고 명문 대학에서 이름을 날렸던 엘리트였단다. 하지만 중년기 삶은 말 못 할 고민이 깊었던 것 같다. 도대체 어떤 고민이 멀쩡했던 중년 남자를 죽음으로 내 몰았을까?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근심은 평온의 뒷면에 위치한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다닌다. 불교에서는 번뇌를 없애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가진 것에 일말의 미련을 두는 순간 극락도, 천국도 거리가 멀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상의 때를 벗어야 비로소 본연의 순수함을 지닌 인간으로 돌아간다는 역설적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이 들수록 마음을 비우는 허심(虛心)이 필요하다.
잔뜩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더할수록 마음의 평온도 거리가 멀어진다.
의학계에서는 건강 관리를 위해 주기적으로 간헐적 금식의 필요를 역설한다. 금식을 통해 망가진 신체 기능을 회복시켜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마음을 비우는 허심(虛心)을 통해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찢기고 상처 난 마음을 회복시키는 자정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면의 나를 돌아보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마음의 브레이크를 걸고 지나온 여정을 돌아보자. 마음에 낀 때를 벗겨내고 깨끗한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자. 본연의 나로 돌아가 다시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자. 그렇게 한 번쯤 멈춰서는 것만으로도 잘 늙기 위한 동력을 얻는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