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다. 하지만 첫 직장이 정밀화학 업체였다. 그것도 실험실이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하지만 하기 싫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6 형제를 키우는 부모님의 가계 부담을 덜어드려야 한다는 일종의 소명의식 때문이었을까, 첫 직장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수많은 화공 약품과 씨름하면서 지새운 실험실의 밤이 몇 날인지 새기도 싫다. 천마산 스키장 슬로프가 보이는 산기슭 실험실에서 장장 11년을 버텼다. 현장에 나가면 화공 약품 냄새가 진동한다. 주말이면 한 번씩 기숙사를 나온다. 집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결혼 전까지). 하지만 몸에선 화공 약품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깨끗하게 몸을 씻고 옷을 세탁해도 그놈의 냄새는 빠지질 않는다. 직업병의 폐해가 이런 것이려니 했다. 첫 직장에서 경험한 기억의 한 단편이다.
2. 보험!
두 번째 직업은 현대해상 보험설계사였다. 인생은 참 잘도 꼬인다. 화학만큼 싫어했던 것, 아니 관심도 주지 않았던 것이 금융공부인데 원수는 외 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처럼 두 번째 직장이 보험업일 줄이야...
인생은 그런 것인가 보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그렇게 원치 않는 길로만 가지는 않았다. 40세의 나이에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이 찾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험을 판매하는 일에서 보험을 가리키는 교육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신인을 대상으로 보험 교육을 하면서 내 안에 숨어있던 끼가 꿈 툴 대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나를 빼 달라는 외침처럼 다가왔다. 그날부터 컴퓨터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파워포인트, 엑셀 수식, 워드, 그리고 인터넷 활용 등 강의에 필요한 기능적 요소들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3. 교육Ⅰ_현대해상
2002년 5월 어느 날, 현대해상 본사 영업교육부에서 전국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실장들을 모두 모아 놓고 어떻게 교육하고 FT 활동을 진행했는지(DRM 교육, 시범 기수 운영) 발표하라면서 내게 30분의 시간을 주었는데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버렸다. 그날 이후 성남 사업부에서 강의하던 내게, 전국구 개념의 연수원 강의를 하게 되었고 사내 방송은 물론 전국에 산재한 본부, 사업부, 지점에 이르기까지 이름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강의 기회가 주어졌다. 하루아침에 사내 유명 강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4. 교육Ⅱ_하이 인재원
강의는 너무나 재미있는 일이다. 판매하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일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이 바로 강의였다.
1998 년 하이플래너 신분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이후 성남 사업부 육성장(2000.01~2005. 4월), 현대해상 영업교육부 전임 육성장(2005.5~2009년 9월), 하이 인재원 연구원(2009.10.1~)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았다.
그동안 현대해상이라는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면서 강의를 했다면, 하이 인재원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곳이다. 우물 안에 있다가 우물 밖으로 나왔다고 할까. 나름 일을 대하는 시야를 바꿔야 했다. 때문에 일에 대한 개념도 새롭게 정의할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현대해상에서 신인과 기존을 교육하면서 루틴 하게 돌아갔던 일상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강의할 순 없었다. 그동안 아마추어 강사였다면 하이 인재원의 강의는 프로가 되어야 했다.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요구되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실하게 해야 하는 책임도 뒤따랐다. 말이 경쟁이지 어쩌면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하이 인재원 연구원들의 강의 열정은 대단했다.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시키는 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현대해상에 있을 땐 재미있게 강의를 했는데, 하이 인재원에서는 강의하는 일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생존 경쟁이란 게 이런 걸까,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일은 현실이지 이상이 아니었다. 즐기면서 했던 일이 생존하기 위해 하는 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일이 주는 무게감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일은 우리가 자신을 창조하고 표현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식이다. 그리고 우리 삶을 모양 지우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일>은 곧 세상에 대한 기여이며, 우리의 서명이 찍힌 하나의 가치를 세상에 보태는 것이다" - 『핫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 중에서』 -
5. 만 55세 임금피크 대상자_직업 수명 5년 연장, 단 매년 연봉의 10% 삭감 통보받다.
그렇게 주어진 일에 함몰되어 있는 순간 2017년 11월이 오고 말았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원치 않는 통보였다. 임금 피크가 시작된 것이다. 이미 예측한 일이지만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이젠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임피는 일을 대하는 개념에 변화를 자극했다. 주어진 일을 하던 대로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순 없다. 이젠 나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5년이다. 이제부터는 덤의 시간이다. 나의 선배들은 이런 혜택도 받지 못했는데 나는 5년의 시간을 더 번 셈이다. 그것 만으로도 감사하자는 생각과 함께 본격적으로 사회적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명함도 차별화시켰다. 후면에는 강사의 핵심가치 5가지를 넣었다. 평소 강의하면서 느꼈던 경험을 고려하여 "선한 영향력"이라는 긍정 이름을 명함의 전면에 새겼다. 그리고 <노년>을 이해하는 시간 투자를 대폭 늘려 나갔다.
6. 콘텐츠 강화_사외 강의를 위한 준비
주변 사람들은 "노년"이라는 콘텐츠에 시큰둥했다. 좋은 콘텐츠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가 낡았고 젊은 사람들에겐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다 늙는다는 단순한 생각이 나로 하여금 노년이라는 단어를 놓지 않게 만들었다. 그렇게 특정 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일에 대한 열정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일의 열정은 임피 이전과는 구별된 열정이다. 퇴직 후 나의 콘텐츠를 완성하기 위한 열정이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의 한 사람으로 노년을 걱정하며 준비의 필요를 확산시키는 일은 더없이 중요한 시대의 요청이라고 생각했기에 헛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 기초한 열정이다.
7. 일의 정의 재정립
왜 일하는가?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벌려고" 일 한다고 답한다. 물론이다. 일의 대가로 돈이 주어지는 만큼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돈 버는 것 외에 또 다른 이유는 없느냐고 재차 물으면, "먹고살려고" 돈을 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 역시 타당한 답변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한 번의 질문을 더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 말고, 또 다른 이유는 없는가?
"그거야 뭐......"
日本의 세계적 기업 <교세라>의 회장, 이나모리 가즈오는 그의 저서 『왜 일하는가?』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궁금하다면 이것만은 명심해주기 바란다. 지금 당신이 일하는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을 갈고닦으며, 삶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라는 것을"
필자는 고민의 깊이가 부족하여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깊은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일은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데 더없이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퇴직이 가까워지면서 일이라는 게 정말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강렬해진다. 있을 땐 귀한 줄 모르더니 없으니까 귀한 것을 안다는 말처럼, 일은 누구나 다 하는 거라는 생각을 할 땐 귀한 것인 줄 모르다가, 막상 조직에서 죽어야 하는 날이 코 앞에 닥치고 나서야 일 할 수 있는 기쁨이 주는 가치를 실감하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