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리 벙그는데 17분, 꽃 잎 활짝 피는데 3분
"인생은 끝이 있어 아름답다. 모두들 그 끝을 향해 걸어가지만 어떻게 이 (生)으로부터 자신을 놓아주어야 하는지는 자기만의 선택이며, 그것으로 한 사람의 삶이 완성된다. 미련과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스스로를 잘 놓아줄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그의 삶은 참으로 아름답게 빛 날 것이다"
-중년수업 / 가와기타 요시노리 -
잘 헤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반드시 이별의 때가 온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 날이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오늘을 사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와 같은 인식은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의 차이를 만든다.
전도유망한 청년이 있었다. 그런데 극심한 통증으로 병원을 찾는다. 진단 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남아있는 수명 시간이 15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연자실하는 사이 전보 한 통이 날아든다. 억만장자인 삼촌이 죽으면서 모든 재산을 이 청년에게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재산이 생겼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잠시 후 또 한 통의 전보가 날아들었다. 학위 논문이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역시 기쁘지 않았다. 죽음이 코앞에 당도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연인이 결혼을 승낙했다는 전보가 들어왔다. 하지만 이 소식도 청년에겐 의미가 없었다. 이젠 죽어야 하니까……
연극 <단지 15분>의 이야기다.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남아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루시우스 세네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 지구는 1년의 공전 주기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태양계의 7번째 별, 천왕성의 공전 주기는 얼마나 소요될까?
천왕성이 태양을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기간은 자그마치 84년이다. 인간이 지구가 아닌 천왕성에서 태어났다면 1년짜리 목숨인 셈이다. 시간의 잣대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인간이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은 80년일 수도 있고 1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두현 시인의 시집 “물미 해안에서 보내는 편지”에 보면 <20분>이라는 시의 하단에 이런 글이 나온다
“노랗게 달궈놓은 길 옆에 앉아, 꽃 피는 모습 들여다보면, 어스름 달 빛에 찾아올 박각시나방 기다리며
봉오리 벙그는데 17분, 꽃 잎 활짝 피는데 3분,
날마다 허비한 20분이 달맞이꽃에게는 한 생이었구나”
정글의 법칙을 보던 금요일 저녁의 일이다.
집에서 키우던 난이 꽃을 피우려 봉오리 진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아내에게 호들갑을 떨었는데, 그걸 이제 봤느냐고 핀잔을 준다. 10여 년을 키우면서 처음 본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하는 것이다. 그날 저녁 정글의 법칙을 보고 잠이 오지 않아 새벽 3시 언저리까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려고 침실로 가는데 조금 전 보았던 봉오리가 활짝 피어 있는 게 아닌가. 얼마나 예쁜지 사진을 찍으면서 또 한 번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리고 며칠 후 출근하는 아침, 난 꽃을 보려는데 보이질 않았다. 지난밤 떨어졌는지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화려한 날은 생각보다 훨씬 짧았다”
생각해 보면 필자도 물로만 세수를 해도 물광이 났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언제였는지 지금은 기억도 희미하다. 세월은 예정된 시간으로 우리의 인생을 끌고 간다. 물로만 세수를 해도 탱탱한 피부를 자랑했던 젊은 시절이, 이젠 추억 속의 한 페이지로 존재할 뿐, 다시는 누릴 수 없는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언제일지 몰라도 반드시 때가 온다. “안녕”이 반기는 인사가 아니라 작별 인사가 되었구나 깨닫는 시기가 온다. 그리고 죽음, 그것은 삶이라는 임시직 후에 찾아오는 상근직이다”
영국의 소설가 <마틴 에이미스>의 말이다.
시간은 소중한 자산이다.
시간은 무한 하지만 인간이 소유해본 시간은 유한하다. 아니 시간의 역사에 점 하나도 찍을 수 없을 만큼 미미한 경험이 전부다.
시간을 가치 있게 써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목적하는 것을 위해 시간을 쓰자. 석음(惜陰)처럼 쓰자. 현직에서 은퇴하는 2022년이 코 앞에 당도했기 때문인지, 이처럼 시간이 소중한 것인지 실감했던 나이가 언제였을지 생각도 안 난다. 아니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왔다는 말이 더 정확한 진단일 게다. 나이 들면 철든다는 말처럼 필자가 그 주인공인인 셈이다. 하지만 감사한다. 이제라도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살 수 있어서... 환경을 탓하고, 세월을 투정하고 원망하며 비관하는 인생이 아니어서 고맙다. 사람인지라 나이 듦이 속상하고, 은퇴해야 한다는 사실이 섭섭하지만, 현실인 것을 어쩌랴. 피할 수 없으니 준비할 뿐이다. 더 나은 생애 2막을 위해 남은 시간은 충분히 쓸 것이다. 그것이 시간의 가치를 모르고 살았던 지난날을 보상하는 길일 테니까...